[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문재인 정부의 억제정책이 효과를 거둔 것일까. 가파르게 상승하던 가계부채가 주춤거리고 있다.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1분기중 가계신용'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 빚이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 1540조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부채 규모는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지만, 이는 지난 정부가 이른바 '빚 내서 집을 사라'고 유도했던 정책으로 쌓이고 쌓여온 기저효과로 봐야 한다.
다행인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가계부채 상승률에 본격적인 제 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와 주택시장 거래 위축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약 14년 만에 최소 수준으로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소득 증가 속도보다 높아 우리나라 '경제뇌관'이 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해야 할 대목이다.
가계부채 문제를 뒤로 하고, 문제는 따로 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자영업자 부채다.
지난해 기준으로 가계부채에 잡히지 않는 자영업자 부채는 약 609조 원에 달한다. 2017년 말에 비해 60조 원가량 늘었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가 대략 550만명으로 추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영업자 1인당 1억원 가량의 부채를 보유한 셈이다. 물론 부채가 없는 경우도 있으므로 실제로는 1억원을 훨씬 웃도는 부채를 보유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특히 서민금융기관(상호금융·저축은행·여신전문회사)의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2016년 말 약 45조원에서 2017년 말 65조원, 그리고 2018년 말 약 84조원까지 연간 20조원씩 총 40조원 정도 증가했다. 2년 사이에 거의 두 배가 된 셈이다.
연체율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올해 3월말 기준 금융권 개인사업자(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0.75%로 지난해 3월말보다 17bp(1bp=0.01%p) 상승했다. 1분기 기준으로 지난 2015년 3월말(1.09%)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부 지방은행의 자영업대출 연체율은 1%를 넘어서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2금융권이 가장 취약하고 1금융권 중에서 지방은행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취약 부문부터 서서히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짐작케 한다.
특히 제2금융권에서는 다음달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본격 시행할 예정이어서 벌이가 시원찮은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돈줄이 끊길 가능성만 높아졌다. 장사가 안돼 수익이 줄고 대출도 막혀 연체율이 올라가면 금융권이 건전성 관리를 강화해 취약 자영업자 위주로 다시 돈 빌리기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부진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의 현실이 부채규모와 연체율 상승 등 지표로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서 민간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올해 체감 경영수지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80%가 나빠졌다고 답했다고 한다. 자영업자들이 인식하는 심각성이 커질대로 커지고 있다.
정부도 가계부채 억제에만 몰두할 게 아니다. 자영업자는 전체 고용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고용 안정을 위해서라도 자영업자 부채가 더이상 악성화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연체율 상승 초기단계부터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뇌관이 터질 수 있다는 문제인식을 갖고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