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도입 이후 상호합의 ‘독소’ 우려 잔존
[매일일보 신승엽 기자] '납품대금 연동제'를 놓고 대·중소기업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납품대금 연동제'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때 가격 상승분을 자동으로 납품대금에 반영하는 제도다. 을의 입장에서 거래관계인 갑의 횡포에 대항할 수 있는 법적 안전장치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로, 오는 10월 4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3고(고환율‧고금리‧고물가) 기조에 원자재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납품 중소기업들의 고충이 깊어진 바 있다. 납품대금 연동제는 거래관계 속 글로벌 정세 변화에 따른 납품기업의 원자재 리스크를 줄여줄 수 있다. ‘갑’의 무리한 요구에 머리를 숙여야 하는 불공정거래를 줄일 수 있는 법안이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기업 및 중견기업 단체들은 납품대금 연동제의 도입에 불편한 심기를 비추고 있다. 제도 도입 이전부터 중소기업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반대했을 뿐 아니라 최근 정부의 관련 행사 초청까지 불응했다. 중소기업계는 자율적인 거래관계 조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만큼, 제도 도입은 합리적인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KT우면연구센터에서 ‘납품대금 연동제 현장안착 TF’를 개최했다. 당초 납품대금 연동제의 구체적인 도입 의도와 취지, 방향성 등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전국경제인연합화‧대한상공회의소 등 대‧중견기업 4곳은 행사에 불참했다.
행사에 참석한 이영 중기부 장관은 대‧중견기업 단체의 불참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장관은 “그간 대기업과 적극 소통했음에도 끝내 불참해 굉장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행사 참여를 요청했음에 불구하고, 거래관계상 ‘갑’의 위치를 차지한 이들은 참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특히 대한상의는 소속된 중소기업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번 불참이 전체의 의견은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견기업 단체들은 납품대금 연동제의 도입 이전부터 반대 입장을 비췄다. 중소기업중앙회를 제외한 경제 5단체(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지난해 11월 납품대금 연동제의 법제화를 반대하는 내용의 경제계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수‧위탁 관계의 거래가 체결된 이후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 대금도 감소하기 때문에 역으로 중소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소기업계의 수익성 하락을 우려한다는 것이 골자다. 동시에 최종 가격 상승을 불러와 소비자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법제화는 시범운영 기간 종료 이후에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었다.
대‧중견기업의 반대는 실질적 명분이 없는 주장에 불과했다. 그간 시행된 자율조정(조정협의회)가 목적에 맞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21년 중소기업 3828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납품대금 조정 신청을 한 적이 있는 기업은 4%에 불과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기업의 본질을 따졌을 때, 수‧위탁 관계가 자율에 맡겨질 경우 갑을관계의 개선 및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오히려 자율이라는 허울을 위해 갑들은 더욱 집요하고 은밀하게 본인들의 위치를 사수했다”고 설명했다.
제도가 도입됐지만, 개선점도 남았다. 계약 주체인 양측이 납품대금 연동제를 시행하지 않기로 합의한 경우, 1억원 이하 소액 계약 또는 90일 이내 단기 계약인 경우, 위탁기업이 소기업인 경우 등에는 납품대금 연동에 대한 내용을 약정서에 적지 않아도 된다. 이중 상호합의는 독소조항이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을의 위치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합의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납품대금 연동제는 여야 만장일치 합의로 통과된 사회적 합의라는 점에서 대기업도 수긍하는 것이 맞다”면서 “상생은 문화적으로 안착해야 이상적이지만, 대기업이 ‘힘의 논리’를 기반으로 따르지 않는다면 강제성을 가진 추가적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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