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vs 북중러' 대립 구도 심화 우려
한반도 정세, 2017년 전쟁 위기 상황으로 돌아갈 수도
매일일보 = 문장원 기자 |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북 확장억제 강화에 방점을 찍은 '워싱턴 선언'에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의 참여를 시사하면서 '한미일 vs 북중러' 대립 구도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최근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관이 이례적으로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포탄 제공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한국을 직접 비판하면서 신냉전 구도가 선명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 받는 것은 '핵협의그룹(NCG)' 신설을 골자로 한 '워싱턴 선언'의 채택이다. 워싱턴 선언은 북핵 대응 확장억제를 논의할 차관보급 정례협의체로 전략핵잠수함(SSBN) 등 미국 전략자산의 정례적 한반도 전개 확대와 핵 위기 상황에 대비한 도상 시뮬레이션 등 확장억제의 구체적 내용을 명문화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워싱턴 선언에 일본의 참여를 시사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한일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워싱턴 선언에 "일본의 참여를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워싱턴 선언은 일단 한국과 미국의 양자 간의 베이스로 합의된 내용"이라며 "그렇지만 일본의 참여를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한미 간에 워싱턴 선언이 완결된 것이 아니고 계속 논의하고, 공동 기획·실행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을 채워나가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먼저 이것이 궤도에 오르면, 일본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같이 협력할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워싱턴 선언의 일본 참여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정부의 주장대로 '사실상 핵공유'라는 대북 확장억제를 매개로 한미일의 군사적 결속이 강회된다면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를 더욱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미일은 북한의 미사일 방어를 명분으로 동해상 훈련 등 군사협력을 강화해 나가며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
러시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관이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포탄 제공 가능성을 거론하며 견제에 나섰다. 통상 재외공관 업무가 주재국과의 양자관계에 국한되는데 비춰볼 때 제3국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을 겨냥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주북 러시아 대사관은 최근 페이스북 계정에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203㎜ 자주포 '2S7 피온' 사진에 대한 설명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대사관은 "우리는 우리의 포탄만 사용하지만, 적군은 나토와 미국의 예속 국가들의 포탄을 사용한다"며 "남조선 당국은 '납입'을 시작할 것이라고 떠벌리고는 한다. 우리는 그들의 행태를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살상 무기 지원 불가'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미국에 포탄을 대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지원하지는 않는지 지켜본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워싱턴 선언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될 경우, 한반도 정세가 전쟁 직전의 상황까지 간 2017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워싱턴 선언을 비판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성명에 대해 "'핵전쟁 억제력 제고와 특히는 억제력의 제2의 임무에 더욱 완벽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신하였다'고 밝혔다"며 "'억제력의 제2의 임무'는 단순한 전쟁 억제의 수준을 넘어서서 핵사용을 통해 남한을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실장은 "향후 북한은 한국과의 전면전까지 가상한 대남 전술핵 사용 훈련을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하고, 적절한 시기에 전술핵탄두를 이용한 제7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군사적 위협의 강도를 계속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국에 대해서는 특히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미국의 핵항모 및 전략핵잠수함을 겨냥한 핵어뢰 사용 훈련으로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다만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2023 국제정세전망'에서 "미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일과 중러의 경쟁적 연대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상호의존적 경제 관계와 군비경쟁의 수준 등을 고려할 때 냉전적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