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에 일본 소비재 가격 경쟁력 강화…고물가 속 소비 확대
매일일보 = 김민주 기자 | 유통업계에 ‘예스재팬’ 바람이 불고 있다.
한일 관계 긴장 완화에 이어 엔화 가치 하락까지 복합적 요인에 의해 노재팬(일본 제품 불매운동) 화력이 약화됐다. 원화에 대한 일본 엔화 가치가 약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일본 여행과 환차익 등을 고려한 엔화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포켓몬, 산리오캐릭터즈 등 일본 캐릭터 마케팅 대흥행으로 일본 관련 소비재에 대한 저항 심리가 축소된 점도 사회에 팽배했던 반일감정을 우호적으로 전환시키는 데 한몫했단 분석이 나온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노재팬 열기가 사그라들면서, 기존 인기 품목이었던 일본 맥주의 수요가 다시 폭증하고 있다. 실제로 관세청 무역통계를 살펴보면, 올 1분기 일본 맥주 수입액은 약 633만달러로, 지난해 동기(266만6000달러) 대비 148.4% 신장했다. 2019년 2분기 반도체 수출규제 이후 4년 만에 최대치다.
‘아사히 슈퍼드라이 생맥주캔’은 지난 5월 국내 편의점 GS25에서 첫 선을 보인 후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롯데아사히주류는 내달부터 해당 상품을 한국 전용 디자인 상품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이 외 편의점의 간판 행사인 ‘수입 맥주 4캔 할인’ 품목 대열에 삿포로‧기린‧에비스‧산토리 등 일본 맥주가 다시 등판하며, 큰 폭의 판매율 신장을 이뤘다. GS25의 지난 1~5월 말까지 일본맥주 매출은 331% 늘었다.
삿포로 맥주는 한국에 첫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야키토리 전문 브랜드 잔잔(ZANZAN)과 협업해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KT&G 상상마당 인근에 2층 규모 팝업스토어 ‘삿포로 프리미엄 비어 더 퍼스트 바’를 오픈, 내달 23일까지 1개월간 운영할 계획이다. 기네스맥주도 현대백화점에서 신제품인 ‘기네스 콜드브루’를 선보이는 ‘카페 기네스’ 팝업을 진행한다.
맥주와 함께 불매 운동의 주타깃이 됐던 패션 브랜드들도 활기를 띠고 있다. 대표적인 일본 SPA 브랜드로 꼽히는 ‘유니클로’는 지난해부터 수익성이 큰 폭으로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 유니클로 국내 운영을 맡고 있는 ‘에프알엘코리아’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보다 116.8% 성장한 1148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도 20.9% 증가한 7042억원으로 집계됐다.
일본 스포츠 브랜드 ‘데상트’도 실적에 훈풍이 불고 있다. 데상트코리아는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40.9% 늘어난 392억원을 달성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2.17% 늘어난 5555억원이다. 또 다른 일본계열 스포츠 브랜드 ‘한국미즈노’ 역시 지난해 영업익과 매출이 각각 329.4%, 29.8% 신장했다.
화장품 기업들도 업황 개선에 일본 시장 진출 및 현지 영업망을 적극 확대 중이다. 화장품 제조업체 마녀공장은 일본 시장에서 ‘손예진 화장품’으로 알려지며 매출액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향후 일본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라카코스메틱스는 지난 4~5월 일본 생활 잡화점인 로프트 12개점과 플라자 35개점에 입점했다. 연내 일본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빠르게 늘릴 예정이다.
일본 브랜드 소비재 판매 재개를 서두르고는 있지만, 유통업체들은 관련 마케팅엔 소극적인 모습이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를 지나며 반일 감정이 다소 누그러진 가운데, 한일관계 해빙무드, 엔데믹화에 따른 일본 여행 수요 급증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일본에 대한 우호적 시선이 늘었다”며 “특히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인해 일본 소비재에 대한 가격 경쟁력이 생긴 만큼 고물가 시대 속 일본 제품 소비는 지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