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조현정 기자 | 사전을 펼쳐서 '정치'의 뜻을 찾아보자. 검색도 좋다. 국립국어원은 정치를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 잡는 따위의 역할'로 정의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만 놓고 보면 정치는 정말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정치'의 정의는 사전적 의미에서 크게 축소돼 있다. '국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만 남아 있다.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안을 찾거나 상호 간 이해를 조정하거나 사회 질서를 바로 잡는 따위의 역할'의 정치는 희미해졌고 본래 의미가 퇴색됐다.
퇴색의 풍경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여당은 야당을 비난하고 정부를 옹호하기에 바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잘 된 것인지에 대한 비평이나 대안 제시는 사라진 지 오래다. 대통령실의 눈치만 보고 '가짜 뉴스'와 '선동'만이 남아 있다. 총선에 누가 공천을 받는지, 공천권을 행사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제외하고는 정당의 역할에 대한 관심은 전무하다.
반대로 야당은 여당과 정부를 비난하기 바쁘다. 내부적으로 '계파'를 나눠 서로 탓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 작은 행동에도 힐난하기 바쁘고 우리 편인지 아닌지만을 따지고 있다. 대부분 논쟁은 내년 공천을 받기 위해서라는 비아냥으로 끝난다.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정책과 법안이 필요한 대담을 나누는 토론회와 프로그램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역 적자가 지속되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수출 감소에 대한 대책이 여의도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가계 대출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감소 방안과 가처분 소득 감소 문제를 토론하는 시늉도 찾아볼 수 없다. 세대를 가르는 프로그램은 넘쳐나지만 사회 질서를 바로 잡거나 이해를 조정하기 위한 정치권의 노력은 없다.
정치의 소멸이 국민들 생활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물론 정치가 소멸한다고 해서 곧바로 국민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무역수지가 계속 적자라고 해도, 가계 대출이 계속 증가한다고 해도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 경제 침체와 가처분 소득 감소는 결과적으로 세금을 감소시키며 소득 재분배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소득이 낮은 국민부터 고통이 가중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 파장은 자영업자에게 전가될 것이고 자영업자의 고통은 결국 중소기업에도 타격이 될 것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겠다(正名)"고 했다. '정명'은 이름(名)에 부합한 실제(實)가 있어야 그 이름이 성립한다는 의미다. 각 역할에 맞는 일에 충실하면 이름이 올바르게 구현된다는 것이다. '정명'에서 벗어난 한국 정치는 정치가 아닌 셈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논어를 새삼 다시 펼쳐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