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민' 마음 살 새 정당 비전·운영 원리 준비"
'자유주의·책임·미래 정치'…"강한 정당 만들 것"
매일일보 = 조현정 기자·문장원 기자 |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제3지대' 신당 창당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참여하는 '세 번째 권력' 신당의 윤곽도 드러나고 있다. '자유주의·책임·미래 정치'를 관통하는 신당으로, 이러한 가치를 공유하는 제3세력들이 규합해야 견고한 거대 양당의 기성 정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류 의원은 특히 "강한 정당을 만들어 '87년 체제'를 완전히 엎어버리고 싶다"며 양당 체제를 깨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류 의원은 25일 <매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거대 양당제를 깨기 위한 제3지대의 움직임을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기존 거대 양당의 기득권 체제가 공고하고 극복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그는 "양당제를 깨는 것이 새로운 정당의 제1비전이 될 수는 없다"면서도 "적어도 그 점에 합의하는 정치 세력이라면 생각을 좁혀나갈 수 있고, 도전이라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정치 상황에 대해선 "현실 정치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며 6석의 소수 정당으로서 맞닥뜨려야 했던 거대 양당 벽의 한계를 토로했다. 그는 '낭만 정치'가 좌절됐던 시기를 언급하며 "양당의 기득권이 견고해 우리가 낸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할 때"를 꼽았다. 의정 활동 기간 쌓인 이 같은 자책감이 '신당 창당'이라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그는 신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는 윤석열식 권위주의와 이재명식 포퓰리즘에 맞선 '자유주의 정치', 대화와 타협으로 반보(半步) 전진하는 '책임 정치', 좌우 불문하고 성역에 도전하는 '미래 정치'를 내세웠다. 현재 또 다른 제3지대 세력인 금태섭·양향자 신당과의 연대와 관련해선 "문을 닫고 통합할 수는 없다"며 "상상력을 넓혀야 한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제도권 밖에서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 세력은 "모두 협상의 대상"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세 번째 권력'의 신당도 30%가 넘는 중도·무당층을 겨냥하고 있다. 다만 기존 세대와 다른 결을 가진 계층인 '제3시민'으로 정의했다. 그는 "조직되지 않은 시민으로 각자도생 명찰을 달고, 개인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며 "정치적 자원이 전무한 이들의 마음을 살 복안이 '새로운 정당의 비전과 운영 원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92년생인 제가 경험해 보지도 못한 87년 체제 속에서 정치를 해왔다"며 거대 양당의 기득권이 산업화·민주화 세대에 단단히 뿌리 박고 있는 만큼 양쪽에 속하지 않은 새로운 '제3시민'의 힘으로 양당 체제를 극복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류 의원과의 일문일답.
-1987년 개헌 이후 최연소 당선인으로 큰 주목을 받으며 정치를 시작했다. 3년간 의정 활동을 평가한다면.
시작은 20대였는데, 지금은 30대가 됐다. 그래도 여전히 최연소다. 방송 등 곳곳에서 20대 정치인들을 만나면 응원한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만큼 객관적 평가가 어려운 영역도 없는 것 같다. 청년·여성·노동의 3가지 가치를 들고 국회에 왔으니, 그 기준으로 보면 입법부 일원으로서 입법과 상임위원회, 국정 감사와 이슈 메이킹 등 의제와 대안을 국민께 알리고,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타투 합법화' 법안이다. 국회 앞 퍼포먼스도 큰 화제가 됐다.
보랏빛 퍼포먼스 이후 수 많은 방송사 등이 '타투'를 주제로 콘텐츠를 생산했다. 여론조사 기관은 국민 여론을 묻기도 했다. 20대 80%, 전 국민 50% 이상이 타투 합법화에 찬성한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수면 아래 잠겨 있던 문제를 이슈로 만들어 낸 셈이다. 아직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지만, 국회 일이라는 게 그렇다. 최대한 많은 이해 당사자와 국민 의견을 물어 제도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에서 공청회가 열렸고, 소위원회에서는 실제 법안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고무적이다. 모든 게 제 퍼포먼스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제 몫의 역할을 해낸 것 같아 보람이 있다. 여론의 관심만큼 확실한 입법 동력은 없다고 생각한다. 올해 2월, 팔뚝에 타투이스트 한국 표준 직업 직업 코드인 '42299' 타투를 새겼고,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법안도 반드시 통과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21대 국회가 9개월 정도 남았다. 꼭 통과시키고 싶은 법안이 있다면.
당연히 노동법 개정안이다. 모두 6건의 근로 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그 중 포괄 임금제 폐지 내용을 담은 제1호 대표 발의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고 싶다. 공짜 노동, 장시간 야근, 과로 문화를 조장하는 포괄 임금제는 노동관계법령 어디에서도 정하지 않은 악습이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근로 시간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1개국 중 가장 길다. 대한민국 근로 시간은 1915시간으로, 독일에 비하면 1.5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저출생, 불평등 위기를 극복할 해법은 노동 시간 단축이다.
포괄 임금제 폐지도 이 맥락과 같다. 역설적으로 보수 정당이 정권을 잡은 지금 추진 동력이 생겼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복합 위기 해결책 마련을 위해 여야가 합심해 법안이 통과할 수 있길 바란다. 저도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겠다.
-소수 정당·30대·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정치 활동에서 큰 도전이었을 텐데 한계로 작용하지 않았나.
모든 정치인이 각자 한계에 직면한 채로 정치를 한다. 청년이고 여성이며 동시에 전문직이 아닌 노동자 출신에 소수 정당 소속 국회의원은 그야말로 소수 중 소수였다. 선입견과 편견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국회 본청을 입장할 때 신원 조회를 받는다거나, 원피스를 입고 등원했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논란이 있었다. 동료 의원은 물론이고 피감기관장까지 무의식적으로 하대할 때도 있었다. 이런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말 힘들 때는 양당 기득권이 견고한 가운데 우리가 낸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할 때다. 국회에 일하러 왔기 때문에 제대로 성취되지 못했을 때 받는 자책감이 더 괴로웠다.
-최근 가장 주목을 받는 '제3지대'와 관련해 신당 창당 방향을 분명히 한 것 같다. 정의당이 추진 중인 혁신 재창당과는 다른 길인가.
지금 상황에서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다만 제가 속한 '세 번째 권력'은 지난해 12월부터 내세운 신당 창당론이 정의당의 기조가 됐고, 정의당은 신당 추진 사업단을 발족했다. '세 번째 권력'과 사업단이 바라보는 신당은 다른 것 같다.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도부가 하는 답을 보면 그렇다. 누구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는 식으로 계속 선을 긋고 있다.
특히 사업단은 지난 기자회견에서 "단지 양당이 아니면 다 된다는 식의 이합 집산은 정의당이 추진하는 신당의 길이 아니다"고 말했다. 멋진 말이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지금은 좋은 정치를 찾을 때가 아니다. 정치 그 자체를 작동하게 해야 한다. 만악의 근원은 양당제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이에 어떤 대화도 불가능한데, 무슨 타협이 있을 수 있겠나.
양당제를 깨는 것이 새로운 정당의 제1비전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점에 합의하는 정치 세력이라면 생각을 좁혀나갈 수 있다고 본다. 제3의 정치 세력이 강력하게 규합할 때, 견고한 기성 정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최소한의 도전이라도 해볼 수 있다. 현실 정치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더라.
-정의당 재창당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참여하고 있다. '세 번째 권력'은 신당 추진 '사업단'에만 들어가지 않을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업' 같은 것이 아니다. 정당을 실제 만드는 일이다. '세 번째 권력'은 '새로운 정당의 비전과 운영 원리'를 만들고 있다. 9월 초 공개할 계획이다.
-정의당 전·현직 당직자 50여 명이 새로운 진보 정당 창당을 위해 탈당했다. 당원들도 정의당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분들은 정의당 소수 정파였던 새로운 진보 소속 당원들이다. 탈당 배경은 류호정과 장혜영이다. 류호정과 장혜영이 정의당을 망쳤고, 우리의 페미니즘이 '검찰형 페미니즘'이라고 규정하는 분들이다. '비국힘-반민주'라는 구호도 흥미로웠는데, 한 마디로 국민의힘이 더 나쁘니, 그 쪽과 먼저 자주 많이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페미니즘은 검찰일 수 없고, 소수 정당이지만 하나의 공당이 다른 당과의 관계를 미리 설정하고 정치할 수는 없다. 페미니스트는 누구도 압수 수색하지 않았고, 정의당은 민주당과는 분명히 다른 정당이다. 정의당 현 지도부에 대한 실망의 층위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 분들의 의사는 존중한다.
-금태섭·양향자 등 제3지대 신당 창당이 이어지고 있다. 이 중에서도 차별성을 보이고 동시에 30%에 이르는 중도층 지지를 받아야 한다.
중도층이 30% 정도 있고, 그들의 지지를 받으면 제3정당이 될 수 있다는 간단한 셈법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다. 중도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진보, 보수가 좌우로 있고 그 가운데 어디쯤 중도라고 한다면 지금 여론조사에 잡히는 '지지 정당 없음'이 모두 중간 어디쯤 일리가 없다. 너무 단선적인 구분이다.
'세 번째 권력'은 이 무당층을 '제3시민'이라 부르고 있다. 조직되지 않은 시민이다. 각자도생의 명찰을 달고, 개인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한강의 기적, 6월 항쟁의 신화는 멀고 생존의 위기는 가까운 국민이다. IMF 시기, 대량 실업의 집단적 공포와도 다르다. 다분히 상대적인, 나 혼자만의 도태를 두려워하고 있는 시민이다. 정치적 자원이 전무한 이들의 마음을 살 복안은 역시 '새로운 정당의 비전과 운영 원리'다.
-거대 양당이 양분하고 있는 한국 정치 지형에서 제3지대가 추구해야 할 가치, 목표는 무엇인가.
'세 번째 권력'이 만드는 '새로운 정당의 비전과 운영 원리'는 9월 공개할 예정이지만, 짧게 먼저 말씀드리면 윤석열식 권위주의와 이재명식 포퓰리즘에 맞선 '자유주의 정치'다. 또 대화와 타협으로 반보(半步) 전진하는 '책임 정치'다. 좌우 불문, 성역에 도전하는 '미래 정치'다.
-금태섭 전 의원이 '에너지는 모아진다'며 제3지대 세력 간 통합에 문을 열어뒀다. 통합에는 어떤 생각인가.
문을 닫고 통합할 수는 없다. 정의당 신당 추진 사업단은 양향자·금태섭과 "소통은 하되, 통합은 없다"는 의문의 메시지를 던지며 발족했다. 상상력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도권 밖에서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 세력은 모두 협상 대상이다.
-내년 총선 출마를 포함한 '정치인 류호정의 미래'는 무엇인가.
인간 류호정의 미래는 여러 가지로 그려볼 수 있다. 평범하게 살아갈 수도 있고, 계속 정치를 할 수도 있다. 다만 정치인 류호정의 미래는 지금보다도 더 새로워야 한다. 그동안 92년생인 제가 경험해 보지도 못한 87년 체제 속에서 정치를 해왔다. 강한 정당을 만들어 87년 체제를 완전히 엎어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