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거래 현실화, 한반도 '러우전쟁' 휩쓸리나
매일일보 = 이설아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년 5개월만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북한에 대한 인공위성 개발 기술을 전수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위성 발사 기술이 전달된다면 북한이 사실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자체 개발을 완료할 수 있게 돼, 러시아가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 고도화로 '한반도 비핵화' 및 동북아 평화 역시 요원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13일(현지시간) 타스 통신 등 러시아 언론들에 따르면 이날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 북러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러시아가 "옛 소련시절 우주대국의 위상을 되찾겠다"며 지난 2016년에 건설안 러시아 극동지역 최대 우주기지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의 부지면적은 551.5㎢로, 우리나라의 나로 우주센터(5㎢) 대비 110배 이상 크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만나서 정말 반갑다"며 "이곳(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은 우리의 새로운 우주기지다. 당신께 보여드리고 싶다"며 정상회담 개최 장소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러시아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우주기지를 장소로 선정한 것은 회담의 목적이 '기술 교류'에 방점이 찍혔기 때문이란 해석을 가능케 한다.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의 말에 "바쁜 일정 속에서도 초대해 줘서 감사하다"며 화답하고, 방명록에 "첫 우주정복자들을 낳은 러시아의 영광은 불멸할 것이다"라는 문구를 남겼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김 위원장은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고,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울 것인지를 묻는 언론 질문에는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라고 답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진행 중인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수급 받고,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자금 및 핵·미사일 개발 기술을 전수 받아 주변 국가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특히 앞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이웃 국가로서 공개되서는 안 되는 민감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며 이번 북러회담이 무역·경제적 유대·문화 교류 등 폭넓은 분야에 걸쳐 이뤄질 것이라고 말해 양국 간 협력 수준에 대해 이목이 모이고 있다.
일각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할 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살상용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나오고 있어, 이번 북러회담을 계기로 한국이 러우 전쟁의 격랑에 휩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지난 11일(현지시간)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러시아 외무부 제1 아시아 국장은 제8차 동방경제포럼(EEF)에 참석하고자 방문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매체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한국의 태도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 직·간접적으로 무기나 군사 장비를 공급하는 무모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한국의 외교적 노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1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동아시아미래재단 주최의 '한반도 주변 4강 관계 추이와 한국의 대응' 강연에서 "현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등 대한민국 정권 중에서 역대급으로 친미적이고 친서방적"이라며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 협력을 강화해 한국의 억지력과 안보적 입지를 강화한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불가피하게 북중러의 반작용을 초래한다"며 "한국은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명확한 외교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보이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위 전 대사는 "국가별 별도의 외교전략을 세울 것이 아니라, 미중러에 대한 통합되고 조율된 외교전략과 좌표를 갖고 국민적 공감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을 대할 때도 언젠가 재개될 수 있는 협상과정에서 한국만 소외되는 일이 없더록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