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러시아, 北에 군사·기술·경제 등 포괄 지원 관측
중국 외 새로운 '외교 선택지' 얻은 北···북중 회담 가능성도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가운데, 이후에도 군사시설을 시찰하는 등 방러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고강도 제재로 수세에 몰렸던 북한은 러시아와의 밀착 교류를 통해 위기 돌파를 꿈꾸고 있다는 분석이다.
17일 복수 외신 등에 따르면 13일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 대통령과 4년5개월여 만에 회담을 가진 김 위원장은 이후 러시아가 자랑하는 군사시설을 방문하며 방러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일례로 김 위원장은 16일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근처의 크네비치 군 비행장에 도착해 세르게이 쇼이구 장관과 함께 러시아 항공우주군의 주요 장비를 둘러봤다. 쇼이구 장관이 김 위원장에게 소개한 주요 무기 중에는 미그-31 전투기에 장착된 극초음속 미사일인 Kh-47 킨잘 미사일 시스템도 포함돼 있었다.
킨잘은 서방과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대결을 벌이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미사일로,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공습에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가 공개한 현장 사진에는 김 위원장이 킨잘에 직접 손을 갖다 대 만지는 모습이 담겼는데, 북러의 군사협력 가능성을 과시하기 위한 연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러는 북한에 많은 것을 가져다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는 미국 및 서방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와 달라 일찌감치 '무기 고갈설'에 휩싸이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활용할 재래식 무기를 북한에 받고, 북한이 필요한 군사 정찰위성 기술을 제공할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한편 두 나라의 밀착 협력은 군사 분야에만 국한되진 않을 전망이다. 최근 유엔 안보리 제재로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은 외화벌이 수단인 노동자 파견과 식량·유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 내 아사자 발생 건수는 올해 1~7월 240여 건에 이르렀다.
북한의 상황도 급박하긴 하나, 당장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보단 아니다. 북한이 무기 제공의 대가로 통상보다 많은 것을 러시아에 요구할 거란 분석이 무리가 아닌 이유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이번 회담이 양국 관계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며 "우리는 정치, 경제, 문화를 포함한 아주 많은 의제를 갖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도 "우리는 경제 협력, 인도주의적 문제, 한반도 정세에 대해 확실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며 화답했다.
아울러 이번 방러가 북한에 '새로운 선택지'를 가져다줬다는 것도 북한 입장에선 큰 성과로 꼽힌다. 북한은 군사·기술·경제 등을 중국에만 의존해 왔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선택적 외교가 가능해졌다.
중국은 북러 정상회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북한이 자신들의 영향권에서 멀어지는 것을 달가워할 리 없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러 정상 만남을 "북러 사이의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우리 양국(북중)은 최고지도자들이 달성한 공동 인식을 이행하며 영역별로 교류·협력을 심화하고 있다"고 북한과의 관계를 과시했다.
중국이 북러 밀착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으로, 이번 김 위원장의 방러가 적극적인 중국의 대북 지원을 끌어낼 수 있다는 관측도 여기에 근거한다. 이달 23일 개막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번 방러에서 많은 것을 얻어간 북한은 당분간 러시아와 지속적인 밀착 행보를 가져갈 전망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4일 "일대일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북한에 방문할 것을 초청했다"며 "푸틴 대통령은 이 초대를 감사히 수락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