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무너지는 순간은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이는 단지 '삼권분립'이라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체제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붕당' 역시 정치적 사상이나 이해 관계에 따라 이뤄진 당파 집단으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대립했다. 날카롭게 토론했지만 기본적으로 공통적인 사상의 뿌리는 유학에 터를 잡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를 해나갔다.
이런 붕당 정치가 무너진 것은 국민이 아닌 자신의 붕당 만을 바라보고, 서로 대화의 상대가 아닌 제거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부터다. 한 쪽으로 세력이 기울어지면서 균형이 사라졌고, 나약한 군왕을 뛰어 넘는 권력을 잡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붕당 정치는 견해를 달리하는 당파 간 상호 견제와 균형 속에서 논의를 통해 정국을 이끌어 가는 진보된 정치 형태라는 장점이 존재했다는 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견제와 균형이 상실되는 시점부터는 독선적인 정국 운영이 될 수 밖에 없고, 결국 힘의 논리가 작용하면서 배타적인 독재가 이뤄졌다. 폐해는 세제와 국방, 외교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는 역사에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기록한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어떤가. 여야 모두 수백 년 전 붕당 정치의 폐해를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의견을 달리하는 주장을 '사문난적'에서 '가짜 뉴스'가 되거나, '비방'이 됐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협치는 실종됐으며 대통령은 제 1야당 대표를 만나지 않고 오히려 야당을 '적'으로 규정해 싸워야 한다고 선전포고를 해버렸다.
이렇듯 내부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고 무너지는 순간에도 경제는 우하향 추세고, 외교전에서도 신냉전 체제의 한쪽 진영과 덥석 손을 잡으면서 안 그래도 복잡한 셈법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적 밀착은 한반도를 세계 대전의 한복판으로 가깝게 밀어 붙였다. 중국과 대만의 전쟁 가능성까지 계속 제기되는데 우리도 이 격랑 속에 스스로 몰아 넣었다.
내부 정치의 균형 붕괴는 결국 복합적인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재앙을 불러온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자당의 이익과 목표를 포기하거나 추진했던 정책을 수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외부로부터 들어오기 때문이다. 정말 국익을 위한다면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데 현재의 정치는 그럴 용기가 없어 보인다.
결국은 국내 정치의 회복이 중요하다. 이 정치는 피아 구별의 정치가 아닌 정책을 놓고 펼치는 형태여야 한다. 보수든 진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책을 연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 본연의 역할에 더 집중하자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선택을 받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정치의 모습이다.
자당의 권력 획득이 우선 순위가 아닌 민생과 평화를 우선 순위로 내세우는 정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길 기대하는 이유다. 붕당 정치는 오로지 정치인 스스로의 학문적 양심에 따랐기 때문에 민의의 정치 반영 여부도 그 양심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얼마든지 민의 수용을 정치에게 요구할 수 있다. 이제는 정치의 균형이 정책 경쟁으로 발현되면서 국민들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