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한국은행은 30일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 속도가 중동 사태 등으로 당초 예상보다 더딜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은 이날 발간한 '주요국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 현황 및 평가' 보고서에서 "최근과 같이 유가 및 농산물 가격이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둔화 재개 시점도 다소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한은은 특히 "한국은 원자재 대외의존도가 높은 데다 환율도 상승하면서 비용 상승 압력의 파급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기·가스요금 인상 폭의 제한, 유류세 인하 등의 정책 지원은 비용 압력을 이연시킴으로써 향후 물가 상승 둔화 흐름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는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 19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8월에 예측한 물가상승률 하락 경로보다 속도가 늦어지지 않겠냐는 게 금융통화위원들의 중론"이라고 언급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분석이다.
현재 한국의 물가 상승 둔화 속도는 주요국과 비교해 빠르지 않은 편이다. 지난 정점 이후 올해 9월까지의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월평균 하락 폭은 0.19% 포인트(p)로 유럽(-0.57%p)과 미국(-0.36%p)보다 작게 나타났다.
같은 기간 물가 목표(2%)까지의 물가 상승 둔화 진도율도 미국과 유럽 지역(각 75% 내외)에 비해 한국이 61%로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한은은 주요국의 물가 상승 둔화 동인이 차별화 양상을 보여온 만큼 물가 목표 수렴 시점도 국가별로 다소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과 유럽 지역은 수요·임금 압력의 영향을 크게 받는 서비스물가 상승률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근원상품물가의 오름세가 상대적으로 더디게 둔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각국 중앙은행과 투자은행(IB) 등 주요 기관이 한국의 물가 목표(2%) 수렴 시점을 2025년 상반기 중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2026년께), 유럽 지역(2025년 하반기)보다 먼저 목표치에 다가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은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주요국의 물가 상승 둔화 속도는 지금과 유사한 속도로 갈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물가 수준이 주요국에 비해 조금 낮으니까 목표에는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앞서 '내년 말 물가상승률 2%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선 "2%에 근접해간다는 의미지 딱 2%를 찍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