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값 하락에도 가격 인상‧동결…‘그리드플레이션’ 논란도
매일일보 = 김민주 기자 | 국내 라면 빅3가 호실적에도 마냥 웃지 못하고 있다.
정부압박 표적이 돼 가격인하를 반강제로 단행했음에도 영업익을 불리자,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격을 더 내릴 수 있었단 지적이 나온다.
15일 업계 및 전자공시 등에 따르면 식품업계 올 3분기 성적이 줄줄이 발표되고 있는 가운데, 라면업체들의 영업익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영업익, 매출, 영업이익률이 전년비 증가세를 넘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회복돼가는 모습이다.
농심은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지난해 동기 대비 103.9% 증가한 557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삼양식품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24.7% 늘어난 434억원, 오뚜기는 87.6% 뛴 830억원으로 집계됐다. 수출 및 해외법인 성장세, 신제품 흥행 등이 주효했단 분석이다.
특히 주요 원료의 국제 가격 하락은 라면 기업들의 실적 호조세를 뒷받침한 최대 요인으로 꼽힌다. 생산과정에서 원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통상 50~60% 정도다. 세계 곡물 가격은 지난해 5월 고점을 찍고 지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선물 시장에서 확인한 이달 밀의 부셸(곡물 중량 단위·1부셸=27.2㎏)당 가격은 평균 5.69달러다. 지난해 5월 평균 가격(11.46달러)에 비해 50.3% 하락한 수치다. 팜유는 943.8원으로 2분기보다 10.5%, 전년 대비 36.4% 하락했다. 팜유 가격이 가장 높았던 지난해 2분기 1806.5원과 비교하면 47.8% 하락해 절반 가까이 낮아진 수준이다.
일각에선 애초에 시장가격에 거품이 낀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기업의 이윤 추구가 물가 상승을 초래하는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도 운운되고 있다. 원자재 값이 올라갈 때는 즉각 이를 반영하지만, 가격이 내려갈 때는 반영하지 않거나 더 늦은 속도로 반영하는 식품업계 관행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가 및 경영 제반 비용 부담 증가를 이유로 제품의 공급 가격을 올려 잡았던 기업들의 영업이익 증가율이 두 자릿수 이상 치솟자, 그리드플레이션 논란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기업들은 올 3분기 실적 호조세는 전년도 경영상황이 워낙 좋지 않았던 만큼 기저효과가 반영된 것에 불과하며, 완연한 회복세라고 보긴 무리라는 입장이다. 실질적 마진율을 파악할 수 있는 영업이익률은 여전히 10%대에 미치지 않았단 점을 근거로 들었다. 영업이익률은 매출액에 대한 영업이익 비율을 뜻한다. 쉽게 말해 영업활동의 수익성으로, 기업의 경영 상황이 어떤지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잣대다. 삼양식품을 제외한 농심, 오뚜기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각각 6.9%, 7.6%로 10%대에 진입하지 못했다. 통상 영업이익률이 10%가 넘어가는 다른 제조업계에 비해 낮은 수치란 설명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식품 기업들이 원재료가 하락한 상황에서도 국민의 고통 속 기업들 자신만의 이익만을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도 “기업들은 원가 상승 조짐이 보이면 판매가격 상향 조정을 통해 리스크를 상쇄하지만, 원가가 감소돼 얻어지는 이익은 영업이익으로 돌린다”며 “결국 원자재값 상승에 따른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돼, 소비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어 상생경영이 절실한 때”라고 규탄했다.
이에 라면업계 관계자는 “라면은 서민 대표 음식 및 생필품이란 인식이 강해 유독 엄격한 잣대가 세워질 수밖에 없지만 기업도 결국 영업익을 창출하고 이를 사회에 환원하는 선순환을 통해 지속가능해진다”며 “과도한 이익 추구로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단 낙인은 위험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