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안 발표해도 싸늘..."결국 이자이익 내놓으란 얘기"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16일로 예정됐던 금융당국과 금융지주 회장단 간담회가 돌연 연기됐다. 간담회 날짜는 주말을 넘긴 20일 오후다. 금융위가 밝힌 연기 이유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코로나 감염 탓. 김 위원장은 5일 간 격리 권고를 받았고 이번 주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이번 간담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자 장사' 비판 속에 상생금융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특히 금융사들에게는 정부가 생각하는 상생금융 안의 방향과 범위, 규모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른바 상생 숙제검사가 다음주로 밀렸지만 금융지주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윤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 이후 은행권의 속앓이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엔 횡재세 관련 입법 논의까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압박의 수위가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분위기다.
앞서 하나금융과 신한금융이 윤 대통령의 '(은행은) 종노릇' 발언에 선제적으로 각각 1000억원대 상생금융안을 내놨는데 금융당국의 반응은 냉랭했다.
김 위원장은 두 금융지주가 상생금융안을 발표한 직후(7일), "제 판단이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 공감대를 만족하는 방안을 찾으려는 것이다"며 "은행이 금리 쪽으로만 수익을 내니 서민 고통과 대비해 사회적 기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고 횡재세도 그 맥락"이라고 말했다. 이어 "은행이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많은 국민이 동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더 나아가 날을 제대로 세웠다. 그는 "3·4분기 영업이익 비교해 보자면 삼성전자·LG전자·현대차를 다 합친 것보다도 영업이익이 크다"며 "과연 (은행들이) 반도체, 자동차와 비교해 어떤 혁신을 했기에 60조원의 이자 이익을 거둘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은행권을 강하게 압박했다.
예상과는 다른 당국 반응에 추가 상생 방안을 공개하려던 다른 금융그룹들은 발표를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과의 회동에 앞서 은행연합회와 상생금융방안을 사전 논의하려던 계획도 취소했다. 자칫 지원 규모를 비슷한 수준에서 맞추려고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일각에선 이자 수익의 일정 비율을 서민금융진흥원과 같은 기관에 기부 형식으로 출연하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는 횡재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취지로 읽힌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년 동안 평균 순이자수익과 비교해 120%를 초과하는 순이자수익을 얻을 경우, 해당 초과이익의 40%까지 '상생금융 기여금'으로 내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은행권 관계자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 금융지원은 당국이 원하는 상생안이 아닌 듯 하다"면서 "더 많은 금융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인데 어느 수준까지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결국 논란이 되는 이자 수익을 건드리는 방식 정도는 돼야 당국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은행권에서 번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의 관치금융이 적절한 것이냐의 논란도 커지고 있다. 앞서 금융권은 올 초 윤대통령의 '돈 잔치' 발언 이후 상생금융 명분으로 7000억원을 출연 혹은 내놓을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당국이 은행권의 자발적 행동을 추가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당국의 압박에 은행권이 이자 수익의 일정 비율을 떼어 내 출연할 경우 주주들의 반발도 불가피하다.
특히 당국이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대손충당금 적립 수준을 강화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생출연 기금이 확대될 경우 배당 재원이 줄어들 수도 있다.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약 60~70%에 이르는만큼 후폭풍이 예상된다.
당국의 행보가 오락가락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 8월 런던에서 열린 '인베스트 K-파이낸스 런던 IR 2023' 행사에 직접 참석한 이복현 원장은 국내 금융사의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배당 자율성을 높일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금융지주의 주주환원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행보는 금융지주의 주주환원 정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편 정부의 압박 수위가 높아질수록, 금융권에서는 "정부의 금융 간섭이 너무 심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미 은행이나 금융기관들은 스스로 대출자산 건전성 관리 측면에서라도 고금리 시대에 부담이 커진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위해 대출 원금이나 이자 상환을 연장 또는 유예해주거나 일정 부분 금리를 낮춰주는 등의 연착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사들을 향한 관치가 너무 당연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며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등 국가 재정 정책으로 이뤄져야 하는 부분까지 왜 금융 사기업에 떠넘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