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 中 의존도↓ 차원 美·EU 우방국 자원 확보
매일일보 = 박규빈 기자 | 미국과 갈등 관계에 있는 중국이 유럽 연합(EU)과 4년 만의 정상 회담에서 얼굴을 맞댔지만 상호 불신만 커진 채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때문에 해외 사업을 영위하는 국내 기업들은 해당국 관련 리스크 관리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13일 무역업계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 7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의 회동을 통해 "정치적 신뢰를 지속적으로 제고하고, 전략적으로 이해 관계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또한 "미국의 정책에 구애받지 않고 유럽이 독자적 외교를 펼쳐야 한다"며 "중국과 유럽은 모든 종류의 간섭을 없애고, 대화와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EU는 무역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다며 중국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해 중국과의 무역에서 3957억유로(한화 약 562조9188억원) 수준의 적자를 봤기 때문이다. 전기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은 불법 보조금을 살포했고, 이 덕분에 중국 전기차 기업들은 EU 역내 기업들보다 평균 20% 낮은 가격에 판매 중이라는 것이 EU 측 주장이다.
아울러 "다자 간 규칙에 따른 질서를 지지한다"며 "위험 회피 정책을 포함, EU 방식의 경제·안보 접근법을 상기시키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함께하자는 중국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낸 것이다.
특히나 2030년까지 중국에 대한 반도체·배터리용 광물 원자재 의존도 저감을 목표로 하는 EU는 핵심 원자재법(CRMA)을 지난 9월 본회의에서 통과시켰고, 지난달 14일에는 27개국으로 구성된 이사회와 의회, 집행위원회 간 CRMA 3자 협상이 잠정 타결됐다고 밝힌 바 있다.
CRMA는 제3국에서 생산된 전략적 원자재에 대한 의존도를 역내 전체 소비량 중 65% 아래로 함을 목표로 한 법안이다. EU 국가들이 수입하는 희토류의 99%가 중국산이어서 공급망 타격에 취약하다는 지적에 따른 후속 조치다. 리튬 등 16종의 광물이 전략 원자재 지정 대상으로 제시된 가운데 이사회는 알루미늄도 넣자는 입장이다. 이처럼 EU는 역내 생산 역량 확대와 공급망 다변화, 자원이 풍부한 유사 입장국들과 전략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대 중국 견제 수준을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도 중국의 배터리 패권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지난 1일 미국 정부는 중국·러시아·북한·이란 정부의 소유나 통제 또는 관할 아래 있는 회사를 '해외 우려 기업(FEOC)'으로 분류하고, 이들이 생산한 배터리 사용을 사실상 하지 못하도록 최대 7500달러에 달하는 세액 공재 혜택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 혜택을 받으려면 배터리 부품과 핵심 광물 원산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인위적인 무역 장벽을 세웠다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허야둥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전기차 기술·산업 발전에 백해무익한 정책"이라며 "미국은 차별적 보조금 관행을 시정하고, 시장 원칙에 따른 공정 무역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우리의 권익을 지키고자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맞섰다.
실제 중국은 실력 행사에 나섰다. 시진핑 주석은 '수출 통제법(export control law)'에 서명해 지난 1일부터 효력을 갖게 됐다. 이 법은 데이터·소스 코드·알고리즘 분야를 포함토록 범위를 넓혀 미국에 보복할 여지를 만들었다는 특징이 있다.
이 법에는 '국가 안보와 이익 보호의 필요성에 부합한다고 판단될 경우 목록에 없는 기술에 대해서도 통제를 적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수출 업체가 통제 대상에 있는 품목을 수출할 경우에는 반드시 허가를 신청토록 했고, 통제 목록에는 존재하지 않으나 대량 살상 무기 설계·생산·운송·테러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에도 같은 방식에 따라 처리하도록 했다.
이처럼 중국이 미국과 유럽 양쪽과 척을 지는 형국이어서 정부와 국내 관련 기업들은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네덜란드 반도체 노광 장비 생산 기업 ASML이 국내에 1조원 규모의 투자를 하도록 주선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가능해졌다. 또한 포스코퓨처엠과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은 중국산 광물 의존도를 낮추고자 미국·EU와 우방인 호주·칠레·아르헨티나 등 해외 광산 투자에 박차를 가하는 등 적극적인 공급망 다변화 노력을 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