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 대신 특정 방송사와 대담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이 되고 있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어쩔 수 없이 입장을 표명하는 자리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이마저도 기자들의 질문을 피하고 사전에 조율된 질의 응답으로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겠다는 것이어서 어떻게 국민적 의문을 해소하겠다는 것인지 그 자체도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때부터 유난히 '소통'을 강조해왔다. 국민과의 소통을 이유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청와대를 나와 지금의 용산 대통령실로 들어갔다. 또 출근길 문답(도어 스테핑)을 진행하면서 "듣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소통의 길은 끊겨버렸다.
윤 대통령은 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지금까지 한차례도 별도의 기자회견을 연 적이 없고, 소통의 상징이던 도어 스테핑 역시 2022년 11월 일방적으로 중단됐다. 이런 상황인데도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할 의지가 아예 사라졌다는 방증이 아닌가 싶다.
불통 행보가 더욱 아쉬운 이유는 그 배경에 자신에게 불리한 이슈를 피해가려는 데 있다. 도어 스테핑도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국면에서 중단됐다. 이번에는 김 여사에 대한 의혹의 실체가 분명한데도 기자회견 대신 대담으로 '뭉개고' 가겠다는 것이다. 소통을 이유로 청와대를 나왔으면서 그 어느 대통령보다도 소통에 인색한 모습이다.
대통령은 국민이 궁금해하는 현안을 진솔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나는 말하겠으니 너희는 들어라'는 일방적인 불통이고 압박이다. 불통 행보는 최근 윤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민생 토론회'에서도 잘 드러난다. 토론회라기 보다는 잘 짜여진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 같다. 토론 참여자가 질문을 하고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만 하다가 박수를 치면서 끝난다. 대통령이 이치에 맞는 말을 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소통을 하고 있다는 '연기의 판'을 깔아준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다.
윤 대통령의 소통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치찌개'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1일 대통령실 기자실을 찾아 출입 기자들에게 "올해는 김치찌개도 같이 먹으면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22년 3월 당선인 시절에도 기자들을 향해 취임 후 김치찌개 회동을 약속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김치찌개를 같이 먹으면 소통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기회가 될 때마다 김치찌개를 소통 메뉴로 꺼내 들었다. 김치찌개 100그릇을 같이 먹는다고 한들 막혔던 언로가 통하겠나.
성리학을 정치 이념으로 내세운 조선에서는 아랫사람의 실정이 윗사람에게 전달돼야 한다는 '하정상달(下情上達)'을 위해 다양한 체제를 마련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언론을 통한 국민과의 만남, 기자회견이 여기에 해당한다.
소통은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래야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지고 현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한다면 불통이 될 수 밖에 없고,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 쏟아지게 된다. 윤 대통령은 말하기 전에 들어야 한다. 그러면 작금의 국정 난맥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