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현역' 최재형 vs 민주 '노무현 사위' 곽상언
매일일보 = 염재인 기자 | 여야가 우리나라 '정치 1번지' 서울 종로를 수성하기 위한 자존심을 건 싸움에 돌입한 가운데 이 지역 민심도 팽팽하게 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일보>가 현장 민심을 취재한 결과, 이 지역 현역인 최재형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하는 주민들은 주로 최 후보라는 인물에 후한 점수를 줬다. 반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주민들은 대체로 후보 자체 평가보단 그가 종로에서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이어가길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1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서울 종로는 감사원장 출신이자 여당 현역인 최 후보와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변호사인 곽 후보가 거대 양당 후보로 등판했다. 여기에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금태섭 개혁신당 최고위원도 도전장을 내면서 '3파전'을 벌이게 됐다. '빅3'를 포함해 총 7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지면서 전국에서 가장 후보가 많은 지역구가 됐다.
종로는 청와대, 정부중앙청사 등이 밀접해 있고 경복궁 등 문화유산을 보유한 우리나라의 정치·경제·교육·문화 중심지다. 총선 때마다 여야 거물급 정치인들이 출마해온 곳으로 윤보선·노무현·이명박 등 대통령만 3명을 배출했다. 정치적 상징성이 큰 지역구이기 때문에 여야 모두 공을 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정치 1번지'답게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는 정치 성향도 특징 중 하나다. 때문에 종로는 선거에서 전국 민심 향방을 파악할 '가늠자'로 평가받는다. 지역을 둘로 나눠보면 단독주택·대단지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평창·교남동 등 서북권에선 대체로 여권 지지 성향이 강하다. 반대로 노후 저층 주거지 밀집 지역인 창신·숭인동 등 동남권은 상대적으로 야권 지지세가 더 두텁다. 다만 '정권 심판론' 등 영향인지 현장에서 체감하는 민심은 지역별 정치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나진 않았다.
정치 성향이 비교적 다양하고 부동층 비율이 높은 곳인 만큼 역대 총선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사이좋게 당선됐다. 최근 치러진 6차례 총선에서 보수 계열(16~18대)과 진보 계열(19~21대)가 각각 세 번씩 승리했다. 현역인 최 후보의 경우 직전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21대)의 대선 출마를 계기로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사례다. 지난 대선에선 윤석열 대통령(3042표)이 득표율에서 3.02%포인트(p) 앞서면서 보수가 승기를 잡았다.
전국 선거의 '바로미터'답게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의견도 다양했다. 주민들은 여당 지지의 경우 주로 후보 '인물' 자체에, 야당 지지의 경우 '정권 심판론' 등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었다. 효자동에 거주하는 유모씨(여·78세)는 "국힘의힘 후보인 최재형 후보를 뽑을 생각"이라며 "최 후보가 노인정에 찾아와 불편하지 않은가 하고 확인하더라. 성실하고 진득하게 일하는 모습을 좋게 봤다"고 말했다.
서촌에서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안모씨(남·79세)도 최 후보의 인물 경쟁력을 높이 평가했다. 안씨는 "최재형 후보를 뽑을 것"이라며 "성실하고 똑똑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장 했을 때도 뚝심 있게 잘했다. 학자 스타일도 느껴지고, 일도 소신있게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곽 후보에 대해서는 "여론조사 지지율은 높지만, 인물이나 실력 자체는 의문"이라며 "장인(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했지만, 그런 (짧은) 관록으로 종로에 출마하는 것은 그렇다"고 언급했다.
반면 야당을 지지하는 주민들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실망감 등 영향으로 곽 후보에 한 표를 행사하겠다고 언급했다. 직장인 이모씨(남·59)는 "곽상언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며 "지금 여당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나라가 업그레이드되나 싶었는데, 지금 정부에서 국격이 떨어뜨리고 있다. 언론, 경제, 외교 모두 반대로 가고 있다. 검찰 출신이라 그런지 정치력 등이 부족하다"며 "민주당이 좀 더 낫겠다 싶은 기대 심리가 있다"고 전했다.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주민 중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15대 선거 당시 종로구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됐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이 무효가 되면서 노 전 대통령이 1998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바 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16대 총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종로를 떠나 부산 북강서을로 출마해 고배를 마셨다. 이때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향후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기반을 다졌다.
통인시장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손모씨(여·63세)는 "15살 때부터 종로에서 산 토박이이자 민주당 지지자"라고 소개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라는 점을 고려해 곽상언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곽 후보가 선거운동 하러 시장에 몇 번 왔는데, 젊고 인간성도 좋아보였다"고 부연했다. 손씨는 통인시장 상인 중 전라도 출신이 많아 민주당 지지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최 후보에 대해서는 "최 후보가 현역이지만, 당선되고 나서 종로구가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종로구에 거주하며 같은 지역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윤일씨(39)도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실현할 수 있는 곽 후보에 한 표를 행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곽 후보를 뽑겠다. 이번 총선에서 곽 후보가 내세우는 '삶의 기본 조건이 균등한 세상'이라는 가치관이 와 닿았다"며 "소득이나 세대, 성별 간 대립하는 시대에 같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또 "'사람이 먼저'였던 노무현의 정신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역설했다.
금 후보에 대해서도 찬반 의견은 갈리는 분위기였다. 다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주민들도 투표는 거대 양당에 할 것을 피력하면서 제3지대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선거에서 최 후보를 선택할 것이라고 밝힌 안씨는 "당이 그래서 그렇지 이런 후보가 인기가 있을 거다. 하지만 (소수정당이라는 점 때문에) 당선되지는 않을 것 같다"며 "국민의힘과 민주당 두 당을 갖고 판가름해야 하니 뽑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지역구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선거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야 후보들은 선거 승리를 통해 진정한 지역 일꾼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최 후보는 이날 <매일일보>와 인터뷰에서 현재 판세에 대해 "22대 총선에서는 '거대 야당 심판론'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종로 발전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며 "GTX-E 평창역 및 신분당선 서북구 연장 사업 등 추진으로 교통 편의 증대, 문화 관광 사업 지원 등을 통한 지역 경제 발전도 시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 후보는 현장 민심은 '윤 정부 심판론'에 기울었다는 평가다. 그는 "윤석열 정권 심판에 대한 종로구민의 분노가 거세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근 9개 여론조사에서 1위를 수성했지만, 투표함이 닫히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한 걸음이라도 더 걸으면서 구민에게 승리를 호소드릴 것"이라고 제언했다.
금 후보의 경우 거대 양당 후보에 밀리는 상황이지만, 현장 민심 반응이 호의적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그는 "'정부 심판'과 '야당 견제' 분위기가 동시에 고조되고 있어 제3지대 신당의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실제 거리를 다녀보면 분위기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개발 이슈에 민감한 유권자들이 금태섭을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제대로, 끝까지, 멋지게 선거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서울 종로는 거대 양당 후보가 접전을 벌이고 있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선거구에 거주하는 만18세 이상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 곽 후보와 최 후보는 각각 44%, 38%를 기록했다. 금 후보는 4%였다. 조사 방법은 무선전화면접 100% 무선전화번호 휴대전화 가상번호 비율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P)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