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은 위성정당 '꼼수'···준연동형 취지 퇴색
매일일보 = 염재인 기자 | 22대 총선에서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면서 21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비례대표제를 둘러싼 각종 폐단이 반복되고 있다. 총 38개의 비례 정당이 탄생하면서 유권자들은 역대 가장 긴 51.7센티미터(㎝)에 달하는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받게 됐다.
거대 양당의 경우 21대 총선처럼 위성정당을 창당, '의원 꿔주기' 등에 나섰다.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 활성화' 등 준연동형 비례제 본래 취지가 퇴색되면서 향후 선거제 존폐 여부를 놓고 논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 등록을 한 정당은 38곳이다. 35개 정당이 후보를 냈던 21대 총선보다 늘었다. 이에 4·10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역대 가장 긴 51.7㎝에 달하는 비례대표 선거 투표용지를 받게 됐다. 지난 총선에서는 48.1cm였다.
38개 정당이 표기돼 투표용지가 51.7㎝가 되면서 21대 총선에 이어 또다시 100% 수개표가 이뤄지게 됐다. 선관위는 지난해 말 34개 정당이 표기된 투표용지까지 처리가 가능한 신형 투표지 분류기를 도입했지만, 이번 총선에서 무용지물이 됐다. 35개 정당이 비례대표 선거에 참여한 21대 총선 당시 분류기는 24개 정당의 34.9㎝ 투표용지만 처리할 수 있어서 '완전 수개표'가 이뤄졌다.
비례대표 선거에서 투표지 분류기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정당 수가 많은 것은 준연동형 비례제 영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준연동형 비례제는 단순히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나누는 병립형과 달리, 인지도가 부족한 신생 정당의 국회 진입이 더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선거 참여 정당은 21개였지만, 준연동형 비례제가 처음 도입된 지난 21대 총선에서는 35개로 급증했다.
비례 정당이 쏟아져 나오면서 투표용지 기호 앞 순번을 차지하기 위한 꼼수도 성행했다. 이번 총선 비례대표 투표용지에는 기호 3번부터 40번까지 나열됐다. 기호 1·2번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제외됐다. 원내 정당은 의석수 등에 따라, 원외 정당은 당명 가나다순에 따라 투표용지 게재 순위를 정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원외 정당은 10번부터 가나다순으로 배정됐다.
실제 38개 정당 중 원외 정당이 29개로 그중 '가'로 당명을 시작하는 정당이 모두 4개다. '가가'로 시작하는 두 정당 외에 가나반공정당코리아, 가락특권폐지당이 있다. 반대로 맨 아랫줄을 노리기 위해 당명을 바꾼 곳도 있다. 지난 2월 국민정책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해 한 달만인 지난 20일 당명을 새로 지은 히시태그국민정책당이다. 국민정책당이라는 기존 당명 앞에 #를 붙였다. #는 통상 '해시태그'로 읽지만, '히시태그'로 등록했다.
거대 양당도 예외는 아니다. 거대 양당은 22대 총선에서도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과거 꼼수를 반복하고 있다. 소수정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비례 위성정당 기호에서 앞번호를 차지하기 위한 '의원 꿔주기' 등에 나섰다. 공직선거법상 비례대표 의원이 직을 유지한 채로 당적을 옮기려면 당에서 제명돼야 한다. 때문에 거대 양당은 각각 위성정당으로 보낼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의결하는 방식으로 의원수를 확보했다.
양당이 거액의 선거보조금을 싹쓸이하면서 각종 꼼수를 통해 국민 혈세를 낭비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각각 177억2362만원, 188억8128만원을 받았다. 이들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와 더불어민주연합은 각각 28억443만원, 28억2709만원을 수령했다. 국민의미래와 민주연합까지 포함해 거대 양당은 선거보조금 총 508억원 가운데 84.3%인 428억5200만원가량을 독차지했다.
여야가 공천 과정에서 비례대표제 본래 취지를 퇴색시키면서 해당 제도에 대한 존폐 논란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 활성화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공천 심사 결과, 전직 다선 중진 의원부터 지난 총선 당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까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을 탈당해 조국혁신당에 입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황운하 의원과 비례 재선 도전자인 김예지(국민의미래)·용혜인(민주연합) 의원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