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까지······ 장장 4개 정권 동안 이어진 국민연금 개혁의 실타래가 최종 매듭을 코 앞에 둔 시점에 멈춰 섰다.
현 21대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17년간 여야·좌우·세대 간 뒤엉킨 주장들의 합의점 도출을 위해 의제숙의단과 시민대표단으로 구성된 연금개혁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한 점은 결정적인 한 수가 되는 듯했다. 이를 통해 이견이 가장 컸던 보험료율(보수 대비 내는 돈)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는 데 합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최종 타결까지 사상 처음으로 9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여야는 소득대체율(보수 대비 받는 돈)에서 2%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시민대표 500명이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는 안을 택했음에도 바통을 넘겨받은 여야가 이를 뒤집고 소득대체율을 대폭 낮추는 데까지 합의했지만, 마지막 의사봉을 내리치기 직전에 손을 놨다.
국민의힘은 재정안정을 위한 소득대체율 43%를, 민주당은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한 45%를 꺼내든 점은 양쪽이 추구하는 바가 달랐던 만큼 다른 주장을 펼칠 수 있다.
다만 21대 국회 내 연금 개혁을 약속한 여야가 불과 2% 차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대뜸 무책임하게 특위 활동 종료를 선언한 대목은 '국회가 국민을 또 버렸다'고 비난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지난 17년간 연금 개혁은 제자리걸음만 거듭했다. 그러던 사이에 연기금의 완전 고갈이 예고된 2054년은 30년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소득대체율을 50%까지 높여야 한다는 시민단체와 노동계에선 이번 결렬이 되려 잘된 일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연금개혁이 1년씩 늦어질수록 보험료율이 0.5%포인트씩 높아지는 점과 불필요한 사회적인 손실을 따져볼 때, 이번에 1차 개혁을 일단락 짓는 게 급선무였다.
1988년 국민연금 첫 도입 당시 소득대체율은 70%에 달했지만 보험료율은 3%였다. 베이비붐 세대의 노동시장 유입과 가파른 경제 성장, 소득향상을 거친 뒤 성장률 둔화와 출산율 감소로 보험료율은 어느새 9%로 높아졌고 소득대체율은 40%대로 낮아진 상태다.
국민연금법을 손볼 수 있는 마지막 골든 타임으로 일컫는 21대 국회에서 합의가 됐다면 연금 고갈 시점은 적어도 8~9년은 연장됐을 테고 누적적자도 2766조원(소득대체율 45%)에서 최대 4318조원(소득대체율 43%)까지 줄일 수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야 합의점이 역대급으로 가까워졌음에도 연금 개혁 논의를 다음 국회로 넘겨야 한다는 무책임한 입장까지 내놨다.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도 모자랄 판에 아직 남은 극적인 접점 도출 가능성에도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공이 넘어갈 22대 국회에서도 여야 간 기싸움은 불 보듯 뻔하다. 특위와 상임위원회 구성은 물론 추후 예정된 지방선거, 대선 등의 일정으로 합의점 도출까지 또다시 허송세월이 되풀이될 가능성도 높다.
21대 국회가 연금 개혁에 마침표를 찍고 유종의 미를 거둘 기회는 아직 보름 넘게 남아 있다. 주호영·유경준·김성주 의원 등 15인의 연금특위가 중차대한 국가적·시대적 과업을 마무리한다는 옹골찬 사명감을 되새기고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