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美보다 앞서 낮출 이유 없어…내년으로 넘길수도"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한국은행이 오는 23일에도 11차례 연속 동결을 결정하고 기준금리를 현 3.50%로 묶을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아직 한은의 목표 수준(2%)까지 충분히 떨어지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요인이다. 더구나 예상을 웃돈 1분기 성장률(전기 대비 1.3%)을 근거로 한은이 같은 날 연간 성장률 전망치(2.1%)를 올려잡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경기는 더 밝게 보면서 동시에 금리를 낮추는 모순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거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아울러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는 상황에서, 한은이 원·달러 환율 상승과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등의 위험을 감수하고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려 역대 최대 수준(2.0%p)인 두 나라 간 금리 격차를 더 벌릴 가능성도 미미해 보인다.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2024년 5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2%로 한 달 전보다 0.1%포인트(p) 상승했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지난해 7~9월(3.3%) 모두 제자리를 맴돌다 10월(3.4%)에는 소폭 반등했으나 같은 해 11월(3.4%) 다시 보합세를 보였다. 이후 지난해 12월(3.2%)과 올해 1월(3.0%)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그러다 2월(3.0%) 전월과 같은 수준을 이어간 뒤 3월(3.2%) 다시 고개를 들었고 4월(3.1%) 비로소 하락했으나 이번에 2개월 만에 또 오른 것이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최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근원물가(에너지·식품 제외)를 중심으로 둔화하겠지만, 유가 추이나 농산물 가격 강세 기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의 목표(2%)를 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속되면서 아직 기준금리 인하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밝혔다.
시장의 예상을 웃돈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1.3%)도 조기 금리 인하 기대에 찬물을 부었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서둘러 낮춘다'는 명분이 약해진 데다, 경기가 생각보다 호조인데 너무 빨리 금리를 내리면 수요측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1분기 한국 성장률이 강한 수출과 예상보다 견조한 소비 덕에 시장 전망치를 상회했다"며 "이에 따라 한은 입장에서 물가와 내수경기 흐름을 좀 더 지켜 볼 필요가 있는 만큼, 금리 인하 시점도 4분기로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금리 인하에 신중한 미국 연준의 태도도 한은의 동결에 무게를 싣고 있다.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3.4%)이 3월(3.5%)보다 0.1%포인트(p) 떨어지면서 시장 일각에선 금리 인하 기대가 다시 살아났지만, 연준 고위 인사 다수는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 경제 전문가들도 대체로 연준이 일러야 9월께, 한은은 이후 10월이나 11월에야 기준금리를 낮추며 통화정책 전환(피벗)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은이 미국보다 앞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며 "미국은 9월, 한국은 10월 또는 11월에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해 두 나라 모두 연내 한 차례, 0.25%p씩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도 한은의 연내 1회 인하를 점쳤다. 그는 "연준은 7월 인하에 나서고 대선 이후 12월 추가로 낮춰 올해 두 차례에 걸쳐 0.50%p 금리를 내릴 것 같다"며 "한국의 경우 물가 안정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10월에 한 차례 0.25%p 인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은 일러야 9월 금리 인하에 나서고, 인하 횟수도 연내 한 차례(0.25%p) 또는 두 차례(0.50%p)에 그칠 것"이라며 "연준의 인하 이후 한은도 인하를 고려할 수 있을 텐데, 인하 횟수는 연내 한 차례(0.25%p)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우에 따라 한은의 금리 인하가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9월 인하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물가 상황 등에 따라 4분기로 넘어갈 수도 있다"며 "연준이 9월 내린다면 한은은 11월 마지막 금통위에서 0.25%p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물가가 불안하고 반도체를 중심으로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올 경우, 가계부채 급증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인하 시점이 내년으로 늦춰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