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백신 격화… 갈림길 선 ‘제약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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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포진 백신 격화… 갈림길 선 ‘제약주권’
  • 이용 기자
  • 승인 2024.06.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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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D 조스타박스, 시장 경쟁력 부족 철수
SK바사 스카이조스터-GSK 싱그릭스 양강 구도
한국MSD의 대상포진 백신 조스타박스는 올해 9월 마지막 물량을 공급한다. 이후 국내에서 접종 가능한 백신은 SK바이오사이언스 '스카이조스터'와 GSK의 '싱그릭스'만 남게 된다. 사진=픽사베이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국내 대상포진 백신 시장에서 MSD가 철수하며, SK바이오사이언스와 글로벌 제약사 GSK의 대결 구도가 성립하게 됐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MSD의 대상포진 백신 조스타박스는 올해 9월 마지막 물량을 공급한다. 이후 국내에서 접종 가능한 백신은 SK바이오사이언스 '스카이조스터'와 GSK의 '싱그릭스'만 남게 된다. 본래 국내에서 접종 받을 수 있었던 대상포진 백신은 3종류로, 조스타박스와 스카이조스터는 생백신, 싱그릭스는 사백신이다.

약학정보원은 백신의 제조 방법에 따라 크게 약독화 생백신(live-attenuated vaccine)과 불활성화 사백신(inactivated vaccine)으로 나눈다. 약독화 생백신은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 또는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체를 실험실에서 변형해 제조된 백신이다. 인체에 투여되면 증식하고 면역 체계를 자극해 면역력을 생성할 수 있지만 질병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불활성화 사백신은 열이나 화학약품으로 불활성화시킨 세균이나 바이러스 전체 또는 일부 부분으로 제조된 백신이다.

생백신인 조스타박스의 철수로 국내산 생백신과 해외산 사백신의 ‘양강 체제’가 형성되면서, 일부 의료인과 언론은 타 백신보다 예방 효능이 우수한 싱그릭스가 우위를 점할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생백신은 암 환자 등 면역저하자에겐 접종이 불가능하단 단점이 있다. 반면 싱그릭스는 만 18세 이상의 면역저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5건의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이 확인됐다.

다만 조스타박스의 철수는 ‘효능 부족’이 아닌 ‘시장 경쟁력 부족’이며, 국민들의 선호도는 효능과 관계없이 저렴한 백신에 집중됐다. 한국MSD는 철수 이유에 대해 "2017년 조스타박스를 대체할 수 있는 대상포진 백신이 도입되면서 조스타박스에 대한 세계적인 수요가 크게 감소했다"며 "이번 결정은 제품의 품질이나 안전성과는 무관하며, 시장 변화에 따른 조스타박스의 임상적 수요 감소와 대체 백신의 가용성을 신중히 평가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스카이조스터는 31만159도즈로 판매량 1위를 달성했다. 전체의 41% 수준이다. 이어 GSK의 싱그릭스(22만4334도즈, 30%), MSD의 조스타박스(22만3842도즈, 30%) 순으로 판매량이 집계됐다.

판매량을 판가름 낸 요소는 가격 차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병관리청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살펴보면, 2021년 △조스타박스주의 예방접종 평균가는 16만6028원 △스카이조스터주 14만6358원이었다. 두 백신은 한 번만 접종하면 된다. 반면 싱그릭스의 가격은 1회당 약 25만원 가량이며, 2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이 필요해 최종 접종 가격은 50만원 안팎이 된다. 싱그릭스는 최신 백신이라 효능이 가장 앞서지만, 타 백신 가격보다 2배 이상 높아 타 백신에 비해 판매량이 적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현 상황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관련 백신 시장이 두 기업으로 양분되면서 조스타박스의 빈자리를 한쪽이 지나치게 잠식해 일어나는 '시장 독점'이다. 현재 상황에선 점유율은 더 높지만 매출은 적은 스카이조스터의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다.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스카이조스터의 매출액은 262억원, 싱그릭스는 385억원이다. 스카이조스터가 10만도즈 가까이 더 팔았지만 매출은 120억원 이상 뒤떨어진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관련 질병 백신 기업 중 유일한 국내사로, 국내 제조·유통이란 특성을 지녀 해당 백신 가격 안정화에 기여해 왔다. 3사 중 가장 저렴한 가격에 백신을 공급해왔던 국내사가 관련 시장서 지분을 잃게 된다면, 경제적인 부분에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만약 스카이조스터가 조스타박스와 마찬가지로 시장성 문제로 철수 수순을 밟는다면, 글로벌 제약사의 독주를 막을 대안은 없다. 국민 입장에선 15만원 수준에 접종할 수 있던 두가지 생백신 선택지를 모두 잃고 50만원을 내고 접종을 받아야 하는 셈이다.

독점이 가격인상으로 이어진단 우려도 있다. 실제 MSD는 2021년과 2022년 연속으로 자궁경부암 백신 ‘가디실9’의 공급가를 인상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해당 백신은 대체제가 없는 독점 제품으로, 2년 연속 가격 인상에도 국내 보건의료계는 속수무책이었다. 조스타박스도 본래 시장 선두 주자였으나, 2017년 스카이조스터 출시 이후 수요가 감소하면서 국내 백신 가격이 안정됐다.

코로나19 이후 세계격으로 ‘백신 주권’이 대두되면서, 한국 정부도 백신 국산화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래 팬데믹 뿐 아니라 매년 유행이 찾아오는 대상포진 등 관련 백신에도 정부 및 국민 관심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상포진은 생명에 치명적인 질환은 아니며, 현존 생백신 모두 접종 대상에 대한 안전성을 증명한 만큼 소비자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접종받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이 갖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한 보건소 의료인은 “현재 대상포진 시장은 소비자 선택과 정부 관심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효능이 우수한 백신을 선택하는 것은 권리지만, 그 과정에서 경쟁자들이 사라진다면 기업 독점을 낳는 것”이라며 “배달앱 등장 초기에 시장 독점을 방관해서 오늘날 자영업자와 소비자, 라이더 모두 그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과 같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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