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기후 위기에 대한 준엄한 경고장이 또 날아들었다. 앞으로 5년 안에 적어도 한해는 지구 기온 상승 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어설 가능성이 80%에 달한다는 전망이 나와서다. 지구 온난화의 마지노선으로 언급되는 ‘섭씨 1.5도’는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합의한 지구 온도 상승의 최후 보루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지난 6월 5일(한국 시각) ‘전 지구 1~10년 기후 업데이트 보고서(Global Annual to Decadal Climate Update·GADCU)’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WMO의 1년~10년 기후 예측 선도센터인 영국 기상청이 매년 작성하는 것이다. 올해는 전 세계 15개 기관의 예측 자료가 분석에 사용됐다.
WMO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4~2028년까지 매년 전 지구 지표 근처 온도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섭씨 1.1~1.9도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앞으로 5년 중 한해가 현재 가장 따뜻한 2023년 기록을 뛰어넘을 확률은 무려 86%나 된다.
향후 5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5도를 초과할 가능성은 47%다. 지난해 보고서에 같은 항목의 확률(32%)보다 15%포인트 오른 수치다. 앞으로 5년 중 적어도 한 해에 기온 상승이 섭씨 1.5도를 초과할 가능성은 무려 80%다. 과거 2017~2021년에 한 해에 섭씨 1.5도를 넘을 가능성이 20%에 그쳤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당초 1.5도 초과 상승 첫 시기는 2030년대로 예측됐는데 그 시기가 상당히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이다.
보고서는 올해 ‘라니냐(La Nina)’가 발생하면서 열대 태평양은 단기적으로 더 시원한 상태로 돌아갈 것으로 예측했다. 라니냐는 태평양 수온이 뜨거워지는 ‘엘니뇨(El Nino)’와 달리 같은 지역의 수온이 차가워지는 현상을 말한다. 엘니뇨가 가고 라니냐가 발생하는데도 향후 5년 동안 지구 온도가 높아지는 건 온실가스가 계속 배출되는 걸 반영했기 때문이다.
지구 온도가 위험수위를 높은 확률로 넘나든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할 사안이 아니다. 2015년만 해도 0에 가깝던 ‘1.5도 초과 가능성’이 2017년엔 20%로 높아졌고, 지난해엔 66%에 이르렀다. 이제 80%까지 치솟았으니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마지노선을 넘는 건 시간문제다. 우리 앞에 전개되는 지구 온난화 시나리오는 참으로 끔찍하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은 지구의 지표 근처 온도(1.2~2m 높이 온도)가 섭씨 2도 상승 시 플랑크톤 감소로 수산 자원의 17%가 줄고 산호초의 99%가 사라질 수 있으며 섭씨 3도 오르면 생물의 54%까지 멸종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안토니우 구테헤스(Antonio Guterres)’ UN 사무총장은 세계 환경의 날인 지난 6월 5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향후 5년간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최대 섭씨 1.9도 높아질 것이라며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마지노선인 ‘1.5도 상승 제한’을 깨뜨리는 해도 늘어날 것이라 예상하는 내용을 발표하며 “우리는 지금 기후 지옥이란 고속도로에서 벗어나야 할 출구를 찾아야 한다”라고 호소하며 “2020년대에 우리가 지구 평균기온 1.5도 상승을 막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6월 13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적극적인 기후 행동을 촉구한 것이다.
그런데도 세계 각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매몰돼 공동 대응이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28)의 합의문에 화석연료의 ‘퇴출’ 문구를 넣는 문제로 충돌한 끝에 ‘전환’이란 용어로 절충해야만 했다.
우리 상황도 녹록하지만 않다. 최근 3년 봄철 평균기온은 1973년 이후 역대 1~3위를 기록했다. 기상청이 지난 6월 5일 내놓은 ‘2024년 봄철 기후 분석 결과’를 보면 올해 봄(3~5월)이 1973년 이래 역대 두 번째로 가장 따뜻한 봄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2022~2024년)간 봄철 평균기온은 역대 1~3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았으며 가속화되는 지구 온난화를 단적으로 확인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왔다.
올봄 전국 평균기온은 13.2도로 평년 대비 섭씨 1.3도나 높았다. 기상관측망을 전국으로 대폭 확충한 1973년 이후 52년 동안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3개월 평균기온으로는 두 번째지만, 전국 일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았던 일수로 따지면 역대 1위다. 봄철 92일 중 72일이 평년보다 기온이 높았다고 한다. 이같이 이상 고온을 경신하는 해가 최근 잦아지고 있다. 지난해 봄이 섭씨 13.5도로 역대 봄철 평균기온 1위, 2022년 봄(섭씨 13.2도)이 3위를 기록하는 등 최근 3년이 역대 봄철 평균기온 1~3위를 차지했다. 올봄 우리나라 해수면 온도도 섭씨 14.1도로 최근 10년 평균보다 섭씨 1.1도 높아 10년 중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어서 빨리 기후 지옥으로부터 벗어 나는 탈출구를 찾아야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개발도상국의 저탄소 에너지 전환을 도울 것”을 약속했고, 작년 유엔총회에선 “끓는 지구로 인해 폭염(暴炎)뿐 아니라 폭우(暴雨), 태풍(颱風) 같은 극한 기후가 일상이 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기상 이변으로 인한 각종 재난에 대한 대처는 어설프기만 했다. 지난해 오송 지하차도 참변이 대표적인 사례다.
WMO의 발표가 아니더라도 기후 위기를 늘 체감할 수 있는 시대다. 기후변화는 더는 ‘먼나라 이웃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폭염, 폭우, 홍수 등 기후변화가 야기한 변화는 국내에서 이미 가시화됐다. 지난해 가을 초록색 낙엽이 길에 쌓였고 서울에 사상 처음 ‘산불 2단계’가 발령되기도 했다. 당장은 폭우 등 재난에 대비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와 함께 원전뿐 아니라 신재생 에너지를 확충해 탄소 감축을 실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기후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국제 평가기관인 독일 싱크탱크 저먼워치(German Watch)와 기후 연구단체인 ‘뉴클라이밋연구소(New Climate Institute)’, 환경단체인 클라이밋액션네트워크(CAN │ Climate Action Network) 인터내셔널 등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90%를 차지하는 63개국과 EU를 대상으로 기후 정책과 이행 수준을 평가해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 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를 발표했다. 한국은 전체 67개국 중 64위를 차지했는데, 한국보다 더 낮은 평가를 받은 나라는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세 나라뿐이다.
‘뉴클라이밋연구소’가 평가한 탄소 배출량이 세계 10위권인 한국은 기후 대응 성과에 있어서는 온실가스 배출 상위 60개국 중 57위라는 오명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차제에 세계 빅테크 기업들이 자국 기업에 대한 ‘무탄소 전기’ 사용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만큼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청정에너지로 평가받는 ‘인공태양’ 기술 선점으로 자원 빈국인 한국을 에너지 강국으로 이끄는 계기가 될 차세대 에너지원 기술 연구와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