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 약화·국회 권한 강화 대부분
22대 국회 개헌 진행 시 '정권 심판' 성격 전망
매일일보 = 이설아 기자 | 1987년 9차 개헌 이후 거의 모든 정권이 개헌을 시도했으나 실제 개헌을 이루는 것에는 실패했다. 다만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각 정권들은 임기 초 '권력 누수'를 경계해 개헌 추진을 임기 말에 시도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레임덕으로 개헌 동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다음 정권이 들어서고, 다음 정권도 임기 말 개헌을 추진했다 실패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의 개헌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법률상 개헌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에 의한 의결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즉 300명의 국회의원 중 200명이 찬성에 나서야 하는데, 개헌을 지속 주장 중인 범야권의 경우 22대 국회에서 총 192석을 차지하며 여권의 '일부 이탈'만 발생해도 개헌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이재명 전 대표가 지난 2022년 대선 후보로 나왔을 당시 그는 4년 중임제 도입을 공약하며 "임기 내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비록 이 대표가 아닌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며 해당 공약은 이뤄지지 못했으나, 이 대표는 현재도 개헌에 대한 의지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야권은 정부·여당과 개헌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여당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먼저'라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지만, 사실상 개헌 추진 시 정권 교체를 우려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공감대 형성을 이루지 못했다'는 정부·여당의 언급과는 다르게, 현재 개헌에 필요한 논의들은 상당 부분 진척된 상황이다. 일단 국회 차원에서도 개헌특별위원회와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의견 및 조문 시안을 발표한 바 있다. 2009년 자문위원회 의견, 2014년 자문위원회 조문 시안, 2017년 자문위원회 조문 시안, 2023년 자문위원회 조문 시안 등 현행 헌법 조문에 대한 대안들이 발표돼 있는 상황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자신의 임기 내 개헌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1997년 김대중·김종필 총재가 내각제 개헌을 추진했지만 '대통령 직선제'를 선호하는 국민의 반대로 무산된 이후, 정권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완화할 수 있는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7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특별담화를 통해 "국민적 합의 수준이 높고 시급한 과제에 집중해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한다"고 발표하며 논의를 촉발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일치'를 골자로 하는 '원 포인트 개헌'을 추진한 것이다. 다만 노 대통령은 당시 정치적 기반이 크게 약화한 때로써 해당 개헌안을 관철시키는 데 실패했다.
이후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현행 헌법이 변화된 시기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며 개헌 필요성을 시사했으나,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진 않았다. 다만 다음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12년 정치 쇄신안을 발표하며 "집권 후 4년 중임제와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 강화 등을 포함한 개헌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그리고 실제 임기 4년차인 2016년 국회 시정연설에서 "1987년 체제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새롭게 도약시킬 2017년 체제를 구상하고 만들어야 할 때"라며 본격 개헌 추진을 시사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후 탄핵 국면에 접어들며 개헌 추진에 실패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 직후부터 개헌 추진에 적극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2월 13일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킨 이후 3월 국무회의를 거쳐 개헌안을 발의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이 왜 야당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헌법개정안을 발의하는지 의아해할 수 있지만, 이유는 크게 네 가지"라며 "우선 개헌은 헌법파괴와 국정농단에 맞서 나라다운 나라를 외쳤던 촛불광장의 민심을 헌법적으로 구현하는 일"이라고 했다.
또 문 대통령은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동시투표 하는 것이 많은 국민이 국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이고, 국민 세금을 아끼는 길"이라며 "또 대선과 지방선거의 시기를 일치시켜 국력과 비용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제게는 부담만 생길 뿐이지만 더 나은 헌법,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나은 정치를 위해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은 중임제와 함께 '국가원수' 지위를 삭제하고 사면권을 제한하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헌법재판소장의 임명권을 헌법재판관 중 호선하는 것으로 개정하고, 대통령 소속인 감사원을 독립기관으로 두게끔 했다. 그러면서 국회의 예산심의권 강화를 위해 예산법률주의를 명문화하고 대통령이 조약 체결 및 비준에 있어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해 국회의 지위는 강화했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은 야당이던 자유한국당의 강한 반발을 샀다.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개헌안은) 국민적 논의와 사회 공론화를 결여했다는 점에서 대통령 스스로 철회해야 한다"며 국무회의에서 만든 개헌안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따라서 해당 개헌안은 야당의 전면 불참으로 인한 의결정족수 미달로 자동 폐기 됐다.
한편 만약 22대 국회에서 개헌이 재추진된다면 기존 논의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정권 심판적' 성격을 띨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원내 제3당인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지난 16일 부산 당원들과의 만남에서 "검찰독재정권 조기 종식 방법으로는 탄핵과 개헌, 하야가 있다"며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과 탄핵을 '투트랙'으로 동시 추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