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당헌·당규 개정하며 '이재명 연임' 기정사실화
매일일보 = 염재인 기자 | 신임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앞둔 여야의 유력 당권주자 라인업이 상반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기존 '당심 100%'에서 '민심 20%'를 반영하기로 한 국민의힘은 비윤(비윤석열)계를 중심으로 다수 인사들이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당·대권 분리 예외 조항'에 대한 당헌 개정안을 통과시킨 더불어민주당은 연임 가능성이 높은 이재명 전 대표를 제외하곤 여타 후보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국민의힘은 전당대회 룰과 관련해 '당원 투표 80%·국민 여론조사 20%'를 반영하기로 한 이후 당권 예비 주자들이 속속 나타났다. 특히 '민심'이 반영되면서 당 비주류인 비윤계 인사들이 다수 눈에 띈다.
앞서 여당은 총선 참패 후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국민 여론조사 비율을 당 대표 선출에 반영하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전까지 당 대표 선출 시 '당원 투표 70%·국민 여론조사 30%'를 유지했으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 당시 친윤(친윤석열)계 주도로 당원 투표 100%로 룰을 변경한 바 있다.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규정이 확정되면서 당권 경쟁은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가장 유력한 당권 주자로 꼽히는 인사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 23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차기 대표 선거 출마를 공식 발표했다.
앞서 그는 지난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을 내려놓은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차기 당권주자 선호도 여론조사 1위를 하는 등 존재감을 과시하며 '한동훈 대세론'에 불을 지폈다. 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 거론 등 정치적 발언을 이어가면서 출마에 무게가 실린 바 있다.
한 전 위원장은 언론 공지를 통해 출마를 예고한 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출마 사실을 알린 것으로 확인됐다. 한 전 위원장 캠프 관계자인 정광재 전 대변인은 이날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어제(19일) 전화를 드렸다"고 전했다.
한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통화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이기는 정당을 만들어보겠다"며 대표 출마 결심을 말했다고 정 전 대변인은 전했다. 윤 대통령 역시 한 전 위원장에게 '열심히 하라'는 취지로 격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두 사람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등 여러 사안에서 이견을 보였던 만큼 한 전 위원장이 당 대표 출마를 앞두고 소원해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이날 당 대표직에 도전장을 냈다. 원 전 장관은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 정부가 성공해야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며 "원팀이 되어야 한다. 이 길로 가야만 3년 남은 정부를 성공시키고, 재집권도 할 수 있다"고 출마 배경을 밝혔다.
원 전 장관은 지난 총선 당시 여당 험지인 인천 계양을에서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와 맞붙었다가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이후 잠행을 이어가다가 두 달 만에 당권 주자로 전격 등판했다. 일각에서는 원 전 장관의 출마는 윤 대통령이 한 전 위원장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나 의원도 같은 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당 대표직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반드시 보수 재집권에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국민의힘에는 훌륭한 대권주자가 많다"면서도 "계파 없고, 사심 없는 제가 그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나 의원은 한 전 위원장과 각을 세우면서 원 전 장관과 함께 '한동훈 대항마'로 부상했다. 그간 출마 관련 언급을 아꼈던 그는 지난 17일 "조금 더 열심히 생각해 보겠다"며 사실상 출마로 가닥을 잡았다. 실제 나 의원은 한동안 친윤계와 거리를 뒀으나, 최근 '어떤 표든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며 지지 기반 확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만 '찐윤(진짜 친윤석열)' 후보인 원 전 장관의 등장은 나 의원에게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 밖에 비윤계 인사들도 당권 도전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비윤계인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1일 지역구인 인천에서 차기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윤 의원은 발표 전날인 지난 20일 국회에서 주최한 보수혁신 세미나 '한국적 보수혁명의 길을 찾아서' 도중 기자들과 만나 '출마 결심 배경'에 대해 "사실 지난 총선을 겪으면서 '당의 위기라는 게 정말로 심각하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낀다"고 언급했다.
여러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는 여당과 달리 야당은 이 전 대표 이외에는 유력 당권 주자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 민주당에선 지난 총선을 압승으로 이끈 이후 줄곧 '이재명 연임론'이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당헌·당규 개정에 나서면서 이 대표 연임은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제4차 중앙위원회의를 열고 '당·대권 분리 예외 조항'을 핵심으로 하는 당헌 개정안을 최종 확정됐다.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특별하고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 당무위원회 의결로 사퇴 시한을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추가됐다.
기존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 대표나 최고위원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대선 1년 전까지 사퇴해야 한다. 당은 지도부 공백을 피하기 위한 것이란 입장이지만, 사실상 이 전 대표 연임을 위한 '맞춤형 개정'이란 해석이 나온다.
개정된 당헌에서는 이 전 대표는 당무위가 지방선거 준비를 '특별하고 상당한 사유'로 인정할 경우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하고,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치른 뒤 대선을 준비할 수 있다. 기존 당헌상으로는 이 대표가 2027년 3월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선 2026년 3월에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연임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 전 이 대표는 최근 사퇴를 발표, 사실상 대표직 연임 도전을 기정사실화한 모습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직후 "조금 전 최고위원회의를 마지막으로 민주당의 당 대표직을 사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상황을 좀 지켜보겠지만, 출마하지 않기로 확정했다면 (오늘) 사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며 연임 도전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번주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 출범이 예정돼 있는 만큼 그 이전에 사퇴를 발표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민주당은 이번주 출범을 목표로 전준위 구성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여기에 내달 초 후보자 등록 공고가 예정된 만큼 이 전 대표의 연임 도전 발표는 빠른 시일 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 역시 차기 당 대표 출마 등 향후 거취에 대한 질문에 "조만간 결정할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당이 자유롭게 지금 당의 상황을 정리하고 판단하고 전당대회를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