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기존 반대 입장 재확인…野, 조건 없는 동의 촉구
매일일보 = 염재인 기자 |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안한 제3자 특검 추천 방식의 '채 상병 특검법'이 여야 모두에게 비판받고 있다. 대통령실·여당은 반대 입장을 되풀이했고, 야당은 진정성을 의심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찬성 여론에 편승한 특검법 추진이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명분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여권 내 반발 여론이 상당한 만큼 한 전 위원장이 당권 경쟁 과정에서 수세에 몰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 전 위원장은 25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전당대회 출마 서류를 제출한 뒤 기자들과 만나 자신이 제시한 '제3자 추천' 방식의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국민들이 이 사안이 이뤄지는 과정과 사람들의 행동에서 실망감을 많이 느꼈고,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를 우리가 여러 차례 실기했다"며 "이 특검이 무리하고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면도 있지만, 그래도 민심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한 전 위원장은 지난 23일 당 대표 선거 출마를 공식 발표한 자리에서 여당이 주도하는 채 상병 특검법을 제안한 바 있다. 그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채 상병 특검법 관련 입장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제가 당 대표가 되면 국민의힘이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특검을 발의하겠다"고 피력했다.
의혹 당사자인 대통령실은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결과를 먼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윤 대통령도 지난달 9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공수처 수사 진행이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여당에서도 한 전 위원장의 조건부 찬성에 반대 기류가 강하다. 곽규택 당 대변인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한 전 위원장이 제안한 특검법 관련 질문에 "당의 입장이 있을 수 있나"라며 특검법 반대를 시사했다.
야당 역시 여당의 유력 당권 주자의 제안을 반기면서도 제3자 방식·시간 지연 등을 이유로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한 전 위원장은 구차한 조건을 걸지 말고 특검법에 동의하라"고 주장했다.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지난 24일 기자들과 만나 "한 전 위원장은 7월 23일 국민의 힘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면 특검법을 발의하겠다는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민주당과 일정이 맞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현재 민주당은 6월 임시국회 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당권 도전에 나선 한 위원장이 제3자 방식의 채 상병 특검법을 띄우면서 일단 당 안팎 이슈몰이엔 성공한 듯 보인다. 특히 향후 차기 대권을 바라보는 한 전 위원장 입장에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찬성 여론 비율이 높은 민심을 반영, 중도층 등 지지 기반 확장을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한 전 위원장의 제안은 공수처 수사가 먼저라는 정부·여당 입장보다 야당 주장에 가깝다. 그러나 대법원장 등 제3자 방식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야당 특검법과 방법론적인 차이가 있다.
한 전 위원장은 야당발 채 상병 특검법을 반대할 명분을 만들었다는 계산이다. 향후 야당이 특검법 처리를 강행할 경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전 위원장은 제3자 방식의 특검법 제안이 야당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조건임을 피력했다. 그는 "그게 민심을 최선으로 따르는 길"이라며 "거부권 행사 이후 재의결이 됐을 때, 이 정도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이) 이를 막을 자신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여권 내 주류에서 강한 반발이 나오는 것은 한 전 위원장이 풀어야 할 숙제다. 현재 한 전 위원장의 경쟁자인 당권 주자들뿐만 아니라 당의 전반적인 반응은 부정적이다. 대통령실에 이어 당내 주류인 친윤계와 등지는 상황을 초래하면서 한 전 위원장의 당권 도전에 난관이 닥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전당대회에서 '당원 투표 80%·일반 국민 여론조사 20%'를 반영하는 만큼 경선 승리를 위해선 당심이 중요하다. 대중적 인지도에 비해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한 위원장의 경우 특검법 수정안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