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오래전 외국인들이 모여 토론하는 국내 TV프로그램을 하나 본 적이 있다. 국제 관계에서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출연자인 캐나다 기자는 “미국은 핵폭탄 2개를 투하한 나라로, 10만 명의 민간이 희생자가 나왔다. 염연한 전쟁 범죄”라고 지적했다. 위험한 행위를 저지른 미국이 경찰 역할을 자처한다는게 옳지 않단 주장이다.
당시 미국인 출연자는 “어차피 지구상에는 경찰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는데, 다른 출연자들이 “그걸 꼭 미국이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미국인이 “미국이 하는게 나아요? 중국이 하는게 나아요?”라고 말하자 다른 출연자들은 모두 헛웃음만 지으며 할 말을 잃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이 질서를 세우겠다면 다른 나라는 모두 따라야 한다’는 미국식 패권주의을 비판하자는 내용이다. 그러나 전제 자체가 틀렸다. ‘미국이 옳은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미국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냐’가 문제다.
미국의 국력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합친 것보다 강하다고 알려졌다. 스스로 강대국이라 자처하는 중국이나 러시아조차 미국에겐 한 수 접어준다. 미국과의 친분을 유지하며 덕을 보는 나라도 있다. 미국이 '생떼'를 쓴다 해도, ‘약자들’이 간섭할 경지가 아닌 셈이다.
일단 비판론을 내세운 기자의 국적인 캐나다부터 살펴보자. 캐나다는 미국의 핵심 우방국인 ‘파이브 아이즈’ 중 하나로, 사실상 국방력을 전부 미국에 의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많은 미국인이 캐나다가 미국의 주(State)로 알고 있을 정도다.
그 덕에 캐나다는 러시아가 코 앞인데도 한번도 타국의 침략을 당해 본적 없다. 그렇게 아낀 국방비를 국민 복지에 할당해 온 캐나다는 미국식 패권주의를 비판할 자격이 없는 셈이다. 러시아와 중국, 북한 등과의 이념 분쟁에서 최전선에 위치한 한국과 일본도 미국의 국방력 덕을 보고 있다.
미국식 패권주의는 이제 산업계에도 뻗어있다. 미국이 산업계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경제 블록화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바이오 산업을 규제하기 위해 초법적인 법안마저 통과를 앞둔 상황이다. 미국 현지서 중국과 경쟁 관계인 한국 입장에선 호재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 및 우방국에 맞대응할 경우 중국 현지 한국 기업들이 위험할 수 있다.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과 시민단체는 강대국의 행보를 ‘이기적’이라 비판하며 보복 외교를 촉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의 옳고 그름을 비판하는 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체격 좋고 권총을 찬 성인이 있는데, 비무장에 왜소한 사람이 그에게 총을 치우라고 말하면 그가 듣겠는가? 그를 설득하려면, 그보다 강한 총을 들던지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던지 둘 중 하나 뿐이다.
현실적으로 미국보다 강한 총을 들 수 없는 한국에게 최선의 방법은 기술력 강화다. 일례로 일본은 불과 80년 전만 해도 ‘미국의 적’이었이만 자동차, 제약, 문화 산업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뤄 현재는 국제사회에서 충분한 발언권을 가진 국가가 됐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제품이 세계 어느나라에서나 빼놓을 수 없는 필수재로 거듭난다면, 강대국과 동등한 지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전자제품과 바이오의약품, 인공지능 기술은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다만 국내 정치 싸움과 규제가 기술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형국이다. 기술 발전은 기업을 배부르게 하는 수단만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강대국 패권주의에서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기술 발전에 대한 투자 및 지원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