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이른바 '김건희 문자'로 출렁이고 있다. 한동훈 후보가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지난 1월 김 여사로부터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사과하겠다는 취지의 문자를 받고도 응답하지 않았다는 게 논란이다.
나경원·원희룡·윤상현 등 나머지 후보들은 한 후보가 '판단 미스'로 총선 참패의 원인을 제공했다며 일제히 비판했다. 총선 국면에서 여당 최대 악재였던 '김건희 리스크'를 대통령실과 당 내 논의 없이 대답도 하지 않고 한 후보 혼자 뭉개면서 총선 패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 후보는 문자 내용이 '재구성'됐다며 실제 문자 내용은 김 여사가 사과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취지였다고 진실 공방 양상으로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정작 놓치고 있는 문제는 김 여사 문자 '내용' 만이 아닌 김 여사 '문자' 존재 자체라는 점이다. 영부인이 명품백을 수수했다는 아주 공적인 사안, 영부인이 개인 자격으로 여당 대표에게 문자를 보내 해결하겠다고 한 사실이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부인을 담당하는 제2부속실도 없는 상황에서 해당 문제를 논의하거나 처리할 수 있는 공적인 조직,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영부인이 개인적으로 나섰다는 점에 논란의 방점이 찍혀야 한다. 하지만 한 후보를 제외한 다른 당권 주자들은 여기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 후보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 후보가 "영부인이 사적인 방식으로 공적이고 정무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총선 기간 대통령실과 공적 통로를 통해 소통했다"며 거듭 공적인 통로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문자'의 존재가 더 문제인 것은 공적인 권한이 없는 김 여사가 소위 '비선'처럼 권력을 행사해 오는 것 아니냐는 정치권 소문의 실체를 사실상 드러냈다는 점이다. 문자 자체도 문제인데 집권 여당의 당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누가 봐도 '한동훈 죽이기' 카드인 문자를 공개한 것 역시 김 여사의 전당대회 개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영부인이 전당대회에 어떠한 형식으로든 개입한 전례는 찾아볼 수 없다.
일각에서는 한 후보와 김 여사의 과거 친분을 생각하면 문자를 보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영부인과 여당 비대위원장의 위치에 있고 문제도 공적인 사안인 만큼 대통령실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했어야 한다.
이번 사태가 윤석열 대통령이 영부인을 담당하는 제2부속실을 폐지한 것에 대한 비판에 다시 불을 지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실은 1월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한 부정적인 여론이 커지자, 제2부속실 부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6개월이 넘은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부여되지 않는 권력'이 분명 작동하고 있는데도 이를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불러온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은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 존재했고, 이 권력이 무자격으로 국정 운영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당시 수사를 이끌었던 윤 대통령과 한 후보는 그 누구보다 '비선'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해결은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