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 견제 뚫고 韓 당권 장악 시 尹 위상 '곤두박질'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연일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채상병 특검법'을 조건부로 수용하자는 주장을 편 데 이어, 자신을 둘러싼 '영부인 문자 무시' 논란도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당내 친윤(친윤석열)계가 집중포화를 쏟고 있지만 한 후보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선 친윤계가 과거처럼 '비윤' 후보를 주저앉힐 수 있느냐가 전당대회 새 관전 요소로 떠올랐다고 보고 있다.
9일 여권에 따르면 최근 친윤계는 유력 당권 주자인 한 후보에 대한 '총공세'를 펴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총선을 앞두고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후보에게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사과 의사를 전했으나, 한 후보가 이를 무시했고 결과적으로 총선 참패에 일조했다는 게 이유다.
'원조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김 여사) 문자에 대한 진실 공방이 아니라 한 후보의 사과 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김 여사 사과 여부는 (총선) 당시 중요 현안이다. 당에서도 대통령실에 직간접적으로 사과를 요청하고 있었고, 한 후보는 이를 결정할 위치에 있었다"며 "한 후보는 당시 (문자 무시) 판단 착오를 인정하고 이것이 총선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사과하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청년 참모'인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도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후보가 당시 김 여사의 문자를 무시한 이유에 대해 "첫 번째는 많은 우리 정치 원로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정무적 무능"이라며 "두 번째는 의도적인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영부인 악마화를 용인한 것은 아닌가"라고 의구심을 표했다.
조정훈 의원은 "(김 여사 사과 여부는) 지난 총선의 굉장히 중요한 변곡점"이라며 "100번 (선거 유세) 다니는 것보다 사과 한번 진정성 있게 했다면 저는 한 20석 이상은 더 지금 우리가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윤계 일각은 한 후보의 '영부인 문자 무시'를 '해당(害黨) 행위'로 규정해 한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는 연판장 서명을 추진하기도 했다. 또 일부는 한 후보를 당 윤리위원회에 제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판장'과 '윤리위 동원'은 친윤계가 지금껏 자신들과 대척해 온 인사들을 축출하기 위해 동원했던 수단이다. 친윤계는 작년 3·8 전당대회 때 윤 대통령과 갈등설이 돌던 나경원 후보의 당대표 출마를 연판장으로 막아 세웠고, 2022년엔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를 '윤리위 징계'를 통해 쫓아낸 바 있다.
다만 친윤계의 '집단 린치'에도 '당권 1강' 한 후보의 기세는 쉽사리 꺾이지 않고 있다. 한 후보는 당권 레이스 시작 이후 발표된 '당대표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만약 나경원·이준석 의원을 주저앉힌 친윤계가 한 후보의 당권 장악을 막지 못할 경우, 윤 대통령의 당 장악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정치권 시각이다. 현역 가운데 현재 한 후보를 지지하는 의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일각에선 이를 우려해 친윤계가 더욱 거세게 한 후보를 몰아붙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 정도로 (친윤계가 한 후보를) 공격했는데 한 후보가 당권을 쥐면 (다른 여당) 의원들이 어떤 시그널을 받겠느냐"며 "그러면 '이제 대통령 말 안 들어도 된다'는 생각이 퍼질 것이고, '윤심'이 더 이상 당에 먹혀들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