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지난해 1,092조 5,000억 원에 달하는 국가채무에 대한 이자로 지난해 정부가 지출한 비용이 24조 7,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늘어난 나랏빚에 고금리까지 겹치면서 정부의 재원 조달 이자 비용 부담이 크게 늘고 있는 모양새다. 2023년도 결산 기준 정부 총지출은 610조 6,907억 원인데 국고채 이자 비용은 19조 198억 원으로 집계돼 이자 비중은 3.1%로 전년보다 0.8%포인트 높아지면서 2015년 3.0% 이후 8년 만에 처음 3%대 진입이다. 정부 지출은 갈수록 많아지는데, 법인세를 비롯한 세금은 제대로 걷히지 않고 있어 올해 정부의 빚과 이자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이자 비용이 증가한 가장 큰 이유는 나랏빚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국고채 발행이 늘었기 때문이다. 국고채는 2021년 당시 발행 잔액 843조 7,000억 원에서 2022년 937조 5,000억 원, 그리고 지난해 998조 원까지 불어났고 2023년 기준 국고채 이자 비용은 23조 1,000억 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4월 현재 국고채 발행 잔액은 1,039조 2,000억 원으로, 5년 전보다 무려 70%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정부 지출 중 이자의 비중은 재작년 2.3%에서 작년에는 3.1%로 급등했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난해에 이은 ‘세수 펑크’다. 올 상반기 중 정부가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기 위해 한국은행에서 일시 빌려 쓴 급전이 무려 91조 6,000억 원에 달해 해당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2011년 이후 14년 만에 최대 기록이다. 코로나19 경제충격을 막기 위해 재정지출을 급히 늘려야만 했던 2020년 상반기의 73조 3,000억 원보다 24.96%인 18조 3,000억 원이나 크게 상회할 뿐 아니라 대규모 세수 펑크가 난 지난해 상반기 87조 2,000억 원보다도 5.04%인 4조 4,000억 원이나 많다.
그나마 지난 6월 말 기준 71조 7,000억 원은 이미 상환했고 아직 갚지 않은 잔액은 총 19조 9,000억 원으로 집계됐지만, 누적 대출에 따른 이자액은 1분기 638억 원, 2분기 653억 원으로 정부가 올 상반기 한국은행으로부터 빌려 쓴 돈의 이자액만 총 1,291억 원에 달해 상반기 발생 이자 규모도 역대 1위다. 한국은행 대출은 세입·세출 간 시차에 따른 일시적 자금 부족을 메울 때 임시로 사용해야 함에도, 세수 펑크가 본격화된 작년 이후 상시 수단으로 변칙 활용되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은행 대출은 새 돈을 찍어 푸는 것이어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정부 차입 한도 50조 원을 정해놓고 엄격한 조건까지 달았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마이너스 통장’처럼 꺼내 쓰고 있는 셈이다. 현 정부의 재정 기조는 ‘건전재정’이다. 전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구체적 실현 과정에서 차별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180도 다른 방향을 지향했는데 ‘재정건전성 우려’라는 똑같은 결론에서 조우하고 있다. 전 정부가 ‘선심성 재정 퍼주기’ 정책을 폈다면, 현 정부는 ‘선심성 세금 깎아주기’로 재정건전성 우려를 키워 왔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앞 정부가 재정을 망쳐놓았다고 강변(强辯)하며 건전하게 만들겠다고 강조했지만, 기업 수익 악화로 세수 여건이 나빠진 데다, 총선을 의식한 각종 선심 정책으로 국가채무는 계속 급증세를 나타내고 있어 이를 방증(傍證)한다.
국가 재정은 골병이 들었는데도, 정치권의 퍼주기 포퓰리즘(Populism) 경쟁은 도를 더해가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땐 소득 하위 80% 대학생 장학금 지급, 초중고생 연 100만 원 바우처(Voucher), 1인당 25만 원 민생 지원금, 8~17세 수당 월 20만 원 등 여야를 따질 것조차 없이 퍼주기 공약을 쏟아냈다. 반도체 경기 회복과 수출 호조세로 세수 여건이 호전되고는 있지만, 당장 올해의 세수 부족액만 10조 원대에 이를 것이라 예상된다.
‘세수 펑크’를 한국은행 일시 대출로 메우는 변칙은 결단코 바람직하지도 지속이 가능하지도 못하다.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지출의 고강도 구조 조정이 절실하다. 정치권 스스로가 포퓰리즘 폭주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진 만큼 재정 적자 폭을 법으로 규제하는 ‘재정 준칙’의 법제화도 시급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세계 경제 위험의 파고가 높아질 때마다 쉽게 흔들리고 풍랑이 일기 십상이다. 갑작스러운 외부 충격파를 견디고 감내하고 이겨내려면 무엇보다도 나라 재정이 탄탄해야만 한다. 그래서 건전재정을 나라 경제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한다. 요즘 발표되는 각종 재정 통계 숫자는 지켜보기 불안하다 못해 나라 곳간은 괜찮은지 심히 우려된다.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인 56조 원대의 ‘세수 펑크’를 낸 정부가 올해도 2년 연속 대규모 적자를 낼 것 같다는 게 중론이다. 올해 들어 5월까지 걷힌 국세가 전년 동기보다 9조 1,000억 원이나 적다고 한다.
문제는 정부의 지출 증가와 세수 부족이 겹쳐 재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점이다. 4·10총선이 있었던 올해 상반기에 정부는 연간 예산의 65%를 풀어 상반기 지출 비중으로 역대 최대다. 반면 1∼5월 걷힌 세금 비중은 연간 세수 목표의 41%에 그치면서 기획재정부는 최근 ‘세수결손 조기경보’까지 발령했다. 평년 수준인 47%에도 턱없이 부족해서다. 기업 실적 악화로 법인세가 잘 걷히지 않는 탓이다. 올해 결손 규모는 10조 원대로 추정되고, 하반기 세수 여건이 받쳐주지 않으면 20조 원대로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세수 부족 규모가 커지면 추경으로 국채를 더 발행하거나 다른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 것이 일반론이다. 하지만 건전재정 기조를 내세우는 현 정부로선 선택하기가 당연히 쉽지 않아 보인다. 올해도 지난해처럼 대규모 불용(不用) 예산이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여건과 환경이 달라져 쓰지 않은 예산은 나름 괜찮겠지만, 반드시 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력이 안 돼 불용이 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불황을 더 심각하게 확대시킬 우려가 있고, 예산을 승인한 국회의 권한을 편법으로 침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도적인 불용은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그런 오해의 소지마저 있어선 결단코 안 된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최근 발표되는 실물경제 지표마저 불안하기 짝이 없다. 통계청이 지난 6월 28일 발표한 ‘2024년 5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항목별로 성한 곳이 손에 꼽을 정도로 온통 상처투성이다. 실물경제의 세 축인 생산과 소비, 투자가 동시에 모두 줄어드는 ‘트리플 감소’를 기록하며 힘겹게 불씨를 살려온 경기 회복 기조에 적색 경고등이 켜졌다. 생산지수가 전월보다 0.7% 감소하고, 소매 판매는 0.2% 줄어들었으며, 설비투자마저 4.1% 줄어드는 등 올 초부터 번갈아 가며 경기 회복을 이끌어온 생산·소비·투자가 일제히 뒷걸음질 친 이른바‘트리플 감소’는 지난해 7월 이후 10개월 만에 다시 나타났다.
현실은 정부의 기대처럼 경기 회복 기조가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경기 흐름이 나쁘면 기준금리를 내리거나 재정을 푸는 게 일반적 대응인데도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연준(Fed)보다 금리를 먼저 내리면 가계 부채와 외환시장의 불안을 불러올 수 있고, 재정 결손이 커지면 정부의 정책 대응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재정·통화정책이 모두가 묶이는 우(愚)를 자초하는 셈이다. 정부의 바람처럼 내수 회복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경기가 아직 바닥을 찍지 않은 상황이라면 재정 결손은 불황의 골을 더욱 깊게 파는 정책 실패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렇듯이 나라 곳간 사정은 나빠지는데 정치권은 큰돈 들어갈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또한 정부와 정치권은 감세 드라이브에 매진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정부는 이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약속했고, 내년 세법 개정안에 상속세·종합부동산세 완화까지 반영할 예정이다. 현실에 맞지 않은 낡은 세제는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겠지만, 전체적인 세수 감소가 없도록 균형을 잘 잡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재정건전성 제고에 국가역량을 총 집주(集注)해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