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설아 기자 |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의 유력 한반도 전문가인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대리한 혐의로 16일(현지시간) 형사기소됐다. 한미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추이가 주목된다.
이날 미국 뉴욕 남부지검은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로 수미 테리 연구원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수미 테리는 고급 저녁 식사와 명품 핸드백, 연구활동비 등을 대가로 받고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또한 한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활동하면서 미국 법무부에 관련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는다. 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은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이 외국 정부나 외국 기관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경우 스스로 그 사실을 미 당국에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수미 테리는 서울 출생으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후 뉴욕대에서 정치학으로 학사 학위를, 보스턴 터프츠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CIA에서 동아시아 분석가로 근무했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로 이직해 동아시아 국가정보 담당 부차관보까지 역임했다. 이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CFR 등 다양한 싱크탱크에서 대북전문가로 일하며 각종 세미나 패널 및 방송 논평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미국 검찰은 특히 테리가 2022년 6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참석한 대북 전문가 초청 비공개 간담회 내용을 회의가 끝나자마자 국정원 간부에게 유출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테리 측은 관련 혐의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수미 테리의 변호인인 리 월러스키 변호사가 "이들 의혹은 근거가 없다. 한국 정부를 대변해 활동했다는 의혹을 사는 기간 수미 테리는 한국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며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현재 한국 정부가 한미 동맹 및 한미일 안보공조 강화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미 테리의 기소는 외교 관계에 적신호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수사 당국이 수미 테리의 혐의에 한국 정보 기관이 연계된 것으로 보는 만큼 한미 정보 교류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다만 수사 당국이 외교 및 정무 사항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 '법 집행'을 위해 수사 및 기소를 진행했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민자가 많은 국가 특성상 미국은 자국 국적의 전현직 공무원이 '모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에 엄격하다.
미국 당국은 지난해 중국 정부가 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에 설치한 '비밀경찰서'에 연관된 혐의로 미국 거주 중국인 2명에 대해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미국 민주당 소속의 밥 메넨데스 상원의원도 이집트 정부의 대리인으로 활동한 혐의로 이날 뇌물 수수와 외국대리인등록범 혐의로 기소돼 유죄 평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