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압박에 대출금리 억지 인상...이자장사만 부추겨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영끌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5대 은행 가계대출은 이달 들어 3조6000억원이나 급증했다. 부동산 거래가 늘어나고 시중 금리가 떨어지는데 금융당국마저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오는 9월로 돌연 연기하면서 막차 수요까지 몰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달 들어 부랴부랴 은행권 현장점검에 나섰다. 하지만 가계대출 관리 책임이 있는 당국이 '뒷북'을 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시장금리가 전반적으로 계속 떨어지는 것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빚투(빚으로 투자)' 대출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압박에 은행들이 줄줄이 가산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지만 하반기 미국·한국 기준금리 인하 기대를 미리 반영한 시장금리 하락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19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2.840∼5.294% 수준이다. 약 보름 전 이달 5일(연 2.900∼5.370%)과 비교해 상단이 0.076%포인트(p), 하단이 0.060%p 또 낮아졌다. 같은 기간 혼합형 금리의 주요 지표인 은행채 5년물 금리가 3.396%에서 3.345%로 0.051%p 하락했기 때문이다.
신용대출 금리(1등급·만기 1년)도 연 4.030∼6.030%에서 3.960∼5.960%로 상·하단이 0.070p씩 떨어졌다.
이에 따라 지난달 19일 신한은행 주택담보대출 상품(신한주택대출)의 5년 고정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아파트·주택구입) 하단이 2.980%를 기록하며 약 3년 만에 도래한 '2%대 금리 시대'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은행채 5년물을 지표로 삼는 주택담보대출 상품들의 금리를 일제히 0.09%p 내릴 예정이다. 최근 은행채 5년물 금리 낙폭을 22일부터 반영하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가계대출 속도 조절을 위해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약 0.1∼0.2%p 올렸지만, 시장금리 하락 탓에 금리 인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가계대출 수요 축소 효과가 그만큼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내비쳤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자 지난 15일부터 5대 은행과 카카오뱅크를 대상으로 현장점검에 나섰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갑작스럽게 연기하면서 가계대출 증가세를 부채질해놓고 뒤늦게 점검에 나섰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금융당국이 연기 발표를 했던 6월 말 당시,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이미 연간 가계대출 경영 목표치를 넘어섰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이 5대 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경영목표(연간 증가액) 총합은 12조5000억원이다. 5대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6조1629억원을 기록했는데, 6개월 만에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 수준을 초과한 셈이다.
은행별로 따져보면 5개 은행 중 세 곳이 연간 목표치를 넘어선 상태였다. 또한 7월 들어 가계대출이 더 불어나면서 목표치를 초과한 은행은 네 곳으로 늘었다. 특히 은행 한 곳은 지난 18일 기준 증가액이 이미 목표치의 3배 수준이었다. 금융당국은 주요 은행에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이내 가계대출 증가 관리'를 당부했는데, GDP 성장률 전망치가 연초 대비 높아졌다는 점을 고려해도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5대 은행 가계대출 증가율은 2.86%(작년 말 692조4094억원→712조1841억원)로 한국은행의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2.5%)를 넘어섰다. 천준호 의원은 "수많은 경고에도 2단계 스트레스 DSR을 연기한 금융당국이 뒷북을 치고 있다"며 "가계대출 관리 실패로 고통받는 것은 결국 서민인 만큼, 지금이라도 근본적인 가계대출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당국이 가계빚 억제를 주문하면서 은행들의 이자장사만 도와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주요 은행들은 당국의 압박에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산 금리를 높이고 있다.
통상 금리 인하기에는 예금 금리보다 대출 금리가 더 빠르게 하락하면서 예대금리차가 축소된다. 하지만 최근 시장 금리 하향세에도 은행이 당국 압박에 인위적으로 대출 금리를 올리면서 오히려 예대금리차가 확대되고 있다.
당국의 정책 엇박자 속에 은행만 배를 불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주택 정책 실패로 빚어진 (부동산) 문제를 대출 금리 억지 인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큰 효과는 없고, 은행만 덕을 보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