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산업부를 출입하던 10여년 전 조선업 호황 끝물 시절 일화다.
포털에 중국이 부동의 조선 1위 국가인 한국을 제치고 수주 1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들로 도배됐길래 “기사 좀 되겠구나” 싶어 허겁지겁 받아쓰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통상 조선업계는 정확한 선박 수주단위를 측정하기 위해 선박 무게 외에도 건조원가나 싣는 화물의 부가가치까지 감안한 보정총톤수(CGT)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날 따라 기사들에는 CGT라는 단위는 보이지 않고 단순무게 단위인 톤수(조선업에서는 G/T)만 기재돼 있었다.
단순무게로 따지면 한국은 당연히 물량공세의 총본산인 중국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기술력까지 감안하는 CGT 단위를 쓴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CGT 기준으로 보면 당시 1위는 여전히 한국이었다.
알고 보니 최초로 작성한 통신사 기사에는 급하게 작성했는지 CGT가 빠진 일부내용만 남았고, 그것을 매체들이 여과 없이 받아쓰면서 벌어진 어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 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시간이 촉박해 출입처에서 뿌린 기업실적 자료를 그대로 기사로 작성했다가 선배 기자한테 “너가 복사기냐”며 눈물빠지도록 혼났다.
해당 실적자료에는 평소와 달리 전 분기 대비 실적만 기재돼 있고, 전년 동기 대비 기준 실적과 영업이익률이 누락돼 있는데 알아보지도 않고 왜 그대로 받아쓰느냐는 타박이었다. 보완하니 당연하게도 헤드라인부터 완전히 다른 기사가 됐다.
만에 하나 투자자들이 통계를 엉뚱하게 해석한 내 기사를 보고 특정업종에 투자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했던 순간이다.
단순히 언론 세태를 고발하자는 게 아니다. 통계만큼이나 대중에게 신뢰도를 주는 확실한 정보는 없다. 그러나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때문에 역대 정부는 예외 없이 똑같은 수출 내지 외교성과 관련 통계를 놓고도 뺄 것은 빼고, 순서는 바꾸는 수법으로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왔다.
일반인들의 정보 습득이 빠르고, 인공지능(AI)이 일상화된 2024년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기이할 정도로 금리인하 기대심리에 의지해 오르는 부동산 가격으로 공급 우려가 심화되자 국토교통부는 지난 17일 설명자료를 통해 “서울 아파트는 입주물량이 올해 3만7897가구, 내년 4만8329가구로 예상돼 아파트 준공 물량 10년 평균(3만8000가구) 대비 부족하지 않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숫자 자체는 틀리지 않다. 다만 해당 통계에는 건축 인허가 현황이 빠져 있고, 민간 집계기관과는 조사표본이 다르다.
인허가 하나만 예를 들어도 시장 침체에 공사비는 오르는 상황에 통계에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지난해 주택 공급 통계에서 주택 인허가·착공·준공 합쳐 19만여 가구 적게 집계하는 우를 범하고도 또 이 모양이다.
공급부족을 우려하는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은 이해가 간다 해도, 이런 점들을 명확히 구분해 발표할 시 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비교적 민간인들의 관심이 덜한 조선업과 전 국민이 목숨 거는 부동산업은 파급력부터 다르다. 더 이상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태는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