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꼬옥 잡고 시장 나들이 나선 노부부와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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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꼬옥 잡고 시장 나들이 나선 노부부와 만났습니다
  • 매일일보
  • 승인 2005.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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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뒤집기-출근 한시간동안의 세상들

날씨가 선선합니다. 지난 여름은 너무도 잔혹했습니다. 벌써 더위가 저만큼 가버린지 오랜데 아직도 지나간 계절을 회상하며 진절머리부터 치는 걸 보니 심하긴 심했나 봅니다. 항시 사람들에게 지난건 소중한 것인데요.

그래서 아픔도, 고통도, 기쁨도, 환희도 모두 `추억`이란 이름으로 아릿하게 다가설 수 있는 건데요.

걸을만 합니다. 물론 열심히 걷다보면 아직까지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줄기를 느껴야하지만요. 그래도 기분이 좋습니다. 운 좋게 코스를 잘 고르면 길섶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를 구경할 수도 있고, 어느 집 담장 너머로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는 주먹만한 크기의 감과 조우하는 기쁨도 있으니까요.

추석도 며칠이 지난 어느 선선한 아침의 출근길. 경동시장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왠일인지 공허감이 느껴졌습니다. 추석 전과는 너무도 달라진 거리 풍경. 이 시간 즈음이면 사방 곳곳에 새벽에 들어온 야채며, 과일 등을 펼쳐놓고 분주해야 할 행상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목청껏 행인들을 불러대던 정육점 아저씨도 오늘은 조용합니다.

그저 조그맣게 라디오를 틀어놓고 고기를 자르고 있을 뿐이었지요.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도 이전에 비해선 턱없이 숫자가 줄어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역시 물건을 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출근길을 서두르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인 듯 했어요. 추석 뒤끝이라서 그렇겠지만 왠지 공허감까지 느껴지더군요.

어쨌든 그곳에서 결코 눈길이 떼어지지 않는 한 광경을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급작스럽게 기자의 시야를 차고 들어온 한 아름다운 노부부의 모습이었습니다.

온통 백발의 머리에 구부정한 몸으로 보아 일흔은 훨씬 넘은 게 틀림없어 보이는 두 분이었습니다.

두 분은 손을 꼬옥 잡은 채 제기 전철역 방향으로 걷고 계시더군요. 다른 한 손에는 각각 검은 봉투와 가방을 든 채였습니다. 두분 다 몸이 많이 불편해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느릿느릿하면서도 어딘지 어색해보이는 걸음이었지요.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본 두 분의 얼굴은 너무도 평안해 보였습니다. 한마디 말을 붙여 보았습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응 제기역에 전철 타러…."
"여기까지 왜 나오셨어요?"
"응, 시장보러 나왔지. 약도 좀 살 겸…."
할머니가 대답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여든 한 살이시고 할머니는 일흔 여덟이라고 하셨습니다.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지…죽을 때가 다 되었는데."

두 분은 그래서 손을 잡고 다니신다고 하셨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냐는 질문엔 `별걸 다 묻는다`며 발길을 옮기셨습니다. 느릿느릿 전철역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두 분.

한참을 그대로 선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얼굴이 화끈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추석 끝 무렵 아내와 `극심`하게 싸운 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요??"

정명은 기자(위클리서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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