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과거부터 국회의원 제1덕목은 철면피랬다. 후보 시절엔 온갖 공약을 늘어놓고 지역 발전에 모든 걸 쏟아낼 것처럼 하더니, 막상 당선되고 나면 '모르쇠'로 일관하는 의원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근 의원들 행태를 보고 있으면 한 가지 덕목을 추가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막말'이다.
21~22대 국회를 취재하며 스스로의 귀를 의심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기자가 생각하는 21대 국회 최고의 막말은 박영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쓰레기" 발언이다. 박 의원은 지난해 9월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태영호 당시 국민의힘 의원이 '독재정권인 김정은의 편을 들면서 북한인권문제만 나오면 입을 닫고 숨어버리는 민주당은 민주라는 이름을 달 자격도 없다'고 비판하자 "북한에서 쓰레기가 왔다"며 인격 모독 수준의 폭언을 퍼부었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의 막말력이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21대 국회 김기현 지도부에서 수석최고위원을 역임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5·18 정신의 헌법 수록을 반대하며 "표를 얻으려면 조상묘도 파는 게 정치인"이라고 했다. 민주화운동 유공자들과 그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발언이었다.
이러한 '막말쇼'는 22대 국회 들어서도 사라질 기미가 전혀 없다. 오히려 더 강력한 막말들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대정부질문 도중 국민의힘이 과거 논평에서 '한미일 동맹' 표현을 쓴 것을 지적하며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이라고 말해 본회의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민주당 소속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최근 상임위에서 탈북자 출신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을 향한 "전체주의 국가에서 생활하시다 보니 민주주의적 원칙이 안 보이는가"라는 발언으로 '탈북민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의 '큰 어른'인 국회의장을 향해 "개판"이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다른 이념을 추구하지만 최소한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격조를 중시했던 국회는 이제 없다. 조롱과 멸시는 기본이고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면 어떤 막말도 서슴지 않는 지금의 국회에 많은 국민이 환멸을 느낀다.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국민 눈높이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가는데, 정작 의원들의 화법과 단어 선택은 점점 저급해지는 요즘이다.
정치권에선 '강성 지지층'에 잘 보이려는 의원들의 심리가 이같은 '막말 생성'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대를 향한 난도질이 강성 지지층에 카타르시스를 줄 순 있어도, 대다수 국민들에겐 짜증 유발밖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