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케즘…LG엔솔·SK온, 증설·가동률 및 투자 속도 조절
SK이노·E&S 합병 시너지 제고…두산도 사업구조 재편 추진
매일일보 = 이상래 기자 | 국내 산업계가 투자 재검토부터 합병까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복합 리스크에 대응하고 있다.
국내 산업계에서 투자 재검토 및 속도조절은 글로벌 수요가 침체된 석유화학·정유, 배터리, 철강 부문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고금리 장기화에 전쟁까지 더해져 투자·소비 심리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면서다.
LG화학은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신성장동력 중심으로 당초 약 4조원 규모로 계획했지만 시황 및 수요 성장세 변화와 매크로한 환경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해 지금보다 신중하게 집행하고 있다”며 “양극재 투자가 최우선 순위임은 변함이 없겠지만 전방 고객사 감산 기조에 맞춰 연도별 캐팩스 계획을 순차적으로 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케미칼도 2분기 컨콜에서 “설비투자는 올해 3조원 수준이고 내년에는 1조7000억원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라며 “불확실한 시장 상황 및 전방산업 수요와 연계해 기존 투자계획을 순연하고 전략적 중요도 낮거나 방향 맞지 않는 방향은 축소해 현금흐름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한화솔루션은 “신규투자 검토는 모두 보류했으며 금년 중 마무리될 미국 태양광 투자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HD현대는 최근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각 계열사별로 컨티전시 플랜에 따라 기존 경영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건설기계, HD현대인프라코어 등 주력사업인 정유와 건설기계 계열사에서 투자 재검토에 나선다.
전기차 케즘(일시적 수요 부진)에 직면한 국내 배터리 업계도 공장 증설과 가동률 조절에 더해 투자 속도조절에 나서고 있다. 특히 최근 전기차 포비아(공포)까지 더해져 보수적 투자 기조가 힘을 받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캐즘의 장기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당분간 전략적으로 필수적인 투자에 관해서만 집행해 나갈 예정이다”고 밝혔다. SK온도 “라인 전환 등의 작업이 전사 관점의 투자비 최소화와 수익성 확보에 초점을 둔 글로벌 공장 라인 운영 방침의 일환으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철강업계도 투자를 조정해 업황 부진 극복에 나선다. 포스코홀딩스는 “시황이 연초에 전망했던 것보다 다소 침체되는 분위기를 반영해 기존 투자 계획보다 다소 축소해서 수정했다”며 “약 10조8000억원이 집행돼 원래 계획보다 2000억원 정도 줄였다”고 밝혔다.
이번 복합 위기를 사업재편의 기회로 삼는 기업도 있다. 보수적인 투자 조정보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한 합병이라는 공격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 그리고 SK온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 합병에 나선다. SK이노베이션은 주력사업인 정유·석유화학 부진에 미래 먹거리인 배터리 침체까지 더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은 “합병 회사는 석유·화학, LNG, 전력, 배터리, 에너지 솔루션, 신재생에너지에 이르는 핵심 에너지 사업들을 기반으로 현재와 미래의 대한민국 에너지 산업을 선도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갖고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추형욱 SK E&S 사장도 “합병법인은 미래 전기화 트렌드를 주도하는 ‘토탈 에너지솔루션 컴퍼니’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그룹도 사업재편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고 있다. 두산은 주력 사업인 건설기계가 미국 주택 경기 침체로 부진한 가운데 신성장동력인 원자력·로봇은 추가 투자금이 필요하다.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떼어 두산로보틱스에 흡수합병하는 사업재편을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사업재편을 통해 두산에너빌리티는 1조원의 신규투자 여력을 확보하고,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은 합병 시너지로 10조원 이상의 자율주행 로봇·무인지게차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