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가장 의외였던, 또는 얼떨떨했던 대목. 소위 '8·15 통일 독트린'이다. 많은 국민들이 동일한 생각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에게 완전한 광복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라며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민주' 통일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6·6 현충일, 6·25 전쟁 당일이 아니다. 광복절에 통일 담론을 던졌다. 그것도 '독트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독트린은 강대국이 세계를 상대로 특정한 외교노선을 선언할 때 쓰는 용어다. 트루먼 독트린, 닉슨 독트린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은 미국의 외교노선으로 회자되는데 누가 미국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이번 8·15 통일 독트린은 1994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승 발전했다는 것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는 민족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추진전략이 담겨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선의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제적으로 실천하고 끌어나갈 행동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주요 내용 중 하나가 남북 대화를 위한 실무 차원의 대화협의체다. 각 부처 실·국장급 협의체인지 아니면 그 이하인지는 아직 모른다. 이전 정부들의 정상외교 성과를 이행하는 '톱다운' 방식으로는 국민적 동의가 어렵다는 차원이다. 그럼에도 이 협의체는 무려 "경제협력, 인적왕래, 인도적 현안, 비핵화 등 모든 사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현 정부의 가장 확실한 대북정책 흔적은 9·19 군사합의 무력화다. 너무 오래 전이라 많은 국민들의 기억에서 이미 흐릿하다. 북한과의 교류협력은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발표 이후 1998년 금강산 관광이 이뤄졌다.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의 필생의 염원이다.
그리고 2000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거쳐 2007년부터 개성공단이 열렸다. 남북한의 많은 인적교류, 경제협력은 각각 2008년 금강산 관광, 2016년 개성공단 중단으로 끝났다. 남북 사이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것을 돌려세워 남북간 대화는 물론 북미간 비핵화 협상의 계기를 마련한 게 문재인 정부다.
북한과 화해협력을 추진할 수도, 반대로 대결을 추진할 수도 있다. 현 정부는 대결을 선택했다. 9·19 군사합의는 남북간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전면적인 대화로 방향을 트는 중대한 계기였다. 2018년 9월 평양정상회담 최대의 성과지만 현 정부는 지난 6월 전면적인 효력중단을 선언했다.
작년 11월 북한의 군사위성 발사가 계기였다. 현재는 전 국민이 생전 처음 보는 오물풍선들이 벌써 10차례 넘게 날아오고 있다. 접경의 대북 확성기도 가동 중이다. 8·15 독트린 주요 내용을 북한군과 주민에게 이 확성기로 전달했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8·15 독트린 이행을 위한 남북 실무 대화협의체를 만들겠다고 한다. 북한에 도대체 어떤 정책을 펴고 싶은 것인가. 군사적 옵션도 가능한 강경 대응인가, 아니면 평화를 위한 대화인가. 한반도 안보, 또는 5000만 국민의 생존을 좌우할 대북 메시지가 이처럼 쉽게 흘러나와도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