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각 늘렸지만 차주상환 능력 저하에 부실 우려 확대
고금리에 빚 못 갚는 서민 늘어…채무조정 신청도 급증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빚을 빚으로 돌려막는 부실 차주들이 카드사로 몰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카드사들이 회수 불가능해 상각 처리한 채권이 2조 원을 돌파했다.
상반기에 2조 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금리, 경기 부진 등으로 빚을 갚지 못하는 차주들이 늘자 부실채권도 불어나면서 카드사의 대손상각비가 급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규모 상각에도 연체율과 손실흡수능력 등이 악화되고 있어 카드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7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하나·우리카드)의 대손상각비는 2조691억 원으로 전년동기(1조8349억 원)보다 12.76% 증가했다.
대손상각비는 카드사의 채권 중 연체 기간이 오래돼 회수할 수 없게 된 부실채권을 손실로 처리된 금액을 의미한다. 대손상각비가 늘어나면 비용으로 처리되는 금액도 증가해 영업이익이 감소하게 된다.
대손상각비 규모가 급증한 곳은 현대카드다. 현대카드의 올 상반기 누적 대손상각비는 2706억 원으로 전년 동기 1744억 원과 비교해 1년 새 55.16% 늘었다. 이어 롯데카드가 30%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롯데카드의 대손상각비는 2051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29.40% 확대됐다.
신한카드 역시 10% 넘는 증가폭을 보였다. 이 기간 신한카드의 대손상각비는 4359억 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동기(3733억 원) 대비 16.77% 뛴 금액이다. 국민카드는 15.10% 늘어난 4184억 원을 기록했고, 우리카드는 11.53% 확대된 2312억 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삼성카드와 하나카드는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삼성카드의 올 상반기 누적 대손상각비는 3316억 원으로 전년동기(3652억 원) 대비 9.20% 줄었다. 하나카드도 8.51% 감소한 1763억 원으로 집계됐다.
대손상각비는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금액이 늘어날 경우 카드사의 수익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카드사가 대손상각비로 손실 처리하면 연체율을 낮추는 효과가 발생하지만, 수익은 줄어든다. 문제는 대손상각비를 늘렸지만, 연체율이 오히려 악화됐다는 점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8개 전업카드사의 상반기 연체율은 전년 말 대비 0.06%포인트(p) 증가한 1.69%를 기록,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카드업계의 대손상각비가 증가한 것은 금리 인상 등으로 서민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면서 카드사가 돌려받지 못하게 된 금액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빚을 감당하지 못해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채무조정을 신청한 채무자는 9만5520명으로 지난해보다 3.85% 늘었다. 같은 기간 신속채무조정 신청자는 2만4778명으로 3.5% 증가했다.
카드사들은 충당금을 쌓기 위해 노력했지만,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올해 6월 말 기준 107.5%로 전년 말 대비 2.4%p 하락하며 손실흡수 능력은 오히려 악화된 상황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카드사들이 대손충당금 규모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지만, 연체율이 높아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관리 방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하반기 실적도 나쁘진 않겠지만, 자산건전성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