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탄소규제 압박…"수소환원제철 비용 등 정부 지원 필요"
매일일보 = 서영준 기자 | 국내 철강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철광석 가격이 하락한 가운데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의 탈탄소화 압박 강도가 높아지면서다. 이에 업계에선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5일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8월 넷째주 철광석 톤당 시세는 96.74달러(12만9500원)로 집계됐다. 철광석 가격이 톤당 100달러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22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업계에선 t당 100달러를 생산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철광석 시세 하락은 중국의 영향이 크다. 중국은 지난해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의 54%(10억1900만t)를 생산할 만큼 그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이런 중국이 건설경기 부진으로 내수 시장에서 수요가 줄자 대규모 재고를 수출하면서 철광석 시세 하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브라질과 호주 등 주요 광산업체들이 중국의 경기부양책에 기대를 걸고 생산을 줄이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
철광석 가격이 하락하자 국내 철강사들의 영업이익은 직격탄을 맞았다. 포스코의 2분기 영업이익은 418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3%, 현대제철은 980억원으로 78.9% 급감했다. 특히 상반기 조선업계와의 후반 가격 협상 과정에서 지난해 하반기 90만원 중반대이던 t당 가격을 90만원 초반대로 낮추기로 합의하는 등 주도권을 내주기도 했다. 후판은 철강업계 매출의 약 15%를 차지한다. 현재 하반기 협상도 진행 중이며 치열한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 1~5월까지 중국에서 수입한 물량은 407만t으로 전년 동기 396만t 보다 늘었다. 중국산 저가 물량은 올해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일(현지시간)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둔 컨설팅업체 마이스틸(MySteel)을 인용해 올해 중국의 철강 수출량이 2016년 이후 최고치인 1억t을 돌파할 것으로 관측했다.
철강업계의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에너지집약도가 높은 제조업에 탄소세를 물리는 미국 청정경쟁법(CCA)과 유럽연합의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큰 부담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에 따르면 CBAM 도입 이후 국내 철강 부문이 감당해야 할 10년간 누적 비용이 3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국내 철강업계의 CBAM 인증서 연간 구매 비용만 2026년 851억원에서 2034년 5500억원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업계는 정부의 차원의 대책 마련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29일 공동 개최한 '제1차 산업부문 탄소중립 정책협의회'에서 업계는 철강산업의 수소환원제철 전환비용 지원을 건의했다.
이날 김희 포스코홀딩스 전무는 "탄소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개발·상용화되면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하는 환원제를 석탄에서 수소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연간 370만톤의 그린수소와 추가적으로 4.5기가와트(GW)의 무탄소 전력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그린수소와 무탄소에너지를 차질 없이 공급해 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EU는 철강기업의 저탄소 상용설비 전환비용의 40~60%를 정부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일본은 4500억엔의 기술개발 지원, 3조엔의 탈탄소 실증 및 설비 전환 지원과 함께 세액공제를 통해 그린스틸 판매량에 톤당 2만 엔의 설비 운영비까지 지원하고 있다"고 해외 사례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