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도 차질 발생 우려감 커
여야 공감대 이룬 전력망법도 국회서 계류 중
매일일보 = 최은서 기자 | 인공지능(AI) 산업의 급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크게 늘고 있지만 전력망 확충은 더디다. 송·변전설비가 기피시설로 인식되면서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발로 차질을 빚고 있어서다. 산업계가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법)도 여전히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최근 경기 하남시의 동서울변전소 증설 불허 처분에 불복해 경기도에 행정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 한전은 2달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행정 심판 결과를 보고, 법원에 행정 소송을 별도로 낼지 결정할 방침이다.
한전은 약 7000억원을 들여 2026년 6월까지 동서울변전소를 옥내화하고 초고압직류송전(HVDC) 변환소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하남시가 전자파 우려와 주민 수용성 결여 등의 사유로 증설 사업 관련 4건의 허가신청을 모두 불허하면서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동해안 일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동서울변전소까지 끌어와 수도권 전력 수요량을 충당하기 위한 국책사업이 제동이 걸린 것이다.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구축 계획에 따라 추진한 증설이 차질을 빚으면서 수도권 전력 수급도 비상등이 켜졌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동서울변전소가 66개월 동안 지연되면서 이미 연간 3000억원씩 총 2조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송전망 건설 지연으로 원가가 싼 전기를 쓰지 못하게 되면 소비자의 전기요금 부담으로 전가될 수 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현재 조성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에도 차질이 생겨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저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사장도 "전력망 건설이 제 때 완료되지 못하면 수도권의 안정적 전력 공급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건설 지연 시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전력 공급도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전 세계가 AI 산업의 패권을 쥐기 위해 전력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 신에너지금융연구소(BNEF)에 따르면 전세계 전력망 투자 규모는 2020년 2350억달러에서 2030년 5320억달러, 2050년 6360억달러까지 급증할 전망이다. 이는 AI 시대를 맞이하면서 첨단산업 부문 투문 확대가 맞물려 전력 소비량이 늘어난데 따른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데이터센터·AI·가상화폐 관련 산업의 전기소비량은 2022년 450TWh(테라와트시)에서 2026년 1000TWh로 2배 넘게 증가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그럼에도 산업계의 숙원 입법과제인 전력망법은 21대 국회에서 불발된데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아직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은 국가기간 전력망 적기건설을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전력망확충위원회를 설치하고 속도감 있는 사업 추진을 위해 전력망 설치 인허가를 대폭 간소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당초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여야가 뜻을 모았으나 9월 정기국회로 미뤄져 산업계가 애를 태우는 형국이다.
이에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지자체 반대로 인한 전력망 확충 어려움을 호소하며 전력망 확충 관련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도 최근 여야 4당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전력망법 등 첨단사업 지원법안의 조속한 입법을 요청했다.
한국경제인협회도 "첨단산업은 타 산업 댖비 전력의존도가 높은데 송변전망 확보 지연으로 계획된 투자마저 위축되고 있다"며 "국가기간 전력망 특별법 입법을 통해 전력망 보강이 적기에 달성될 수 있는 법·제도적 환경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