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해리스, 자국 산업 보호주의 기조 강화…韓 피해 우려도
이재용·최태원·정의선, 美정치권 스킨십 강화…긴급 사장단 회의도
매일일보 = 이상래 기자 | 국내 산업계가 미국 대통령 선거 불확실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대결로 압축된 가운데 두 사람 모두 미국 우선주의 기조 강화를 선언하면서다. 특히 미국 현지 투자를 늘린 국내 기업들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법인세 등의 변수도 고려해야 될 처지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산업계는 미국 대선의 결과가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확실한 대응책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와 해리스는 박빙의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이 조지아주립대와 함께 지난 9∼15일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는 47%, 해리스는 44%의 지지를 각각 받았다. 두 후보는 오차범위(±3.1%p) 내 접전이다.
국내 기업들은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유력한 후보가 굳어지지 않으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는 실정이다. 과거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시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를 앞선다는 조사가 완전히 뒤집힌 전례도 있다.
일단 국내 산업계는 두 후보의 공통된 기조인 ‘미국 우선주의’를 주목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발표한 ‘대선을 앞두고 강화되고 있는 미국의 보호무역조치 내용과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해리스 후보 모두 자국의 산업 보호를 위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는 10%의 보편관세와 60%의 대중(對中) 관세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트럼프 1기보다 더욱 강력한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바이든-해리스 정부도 수입규제 조치 강화와 함께 철강·알루미늄·자동차·배터리·태양광 등 자국 전략산업 보호를 위한 정책을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두 후보가 내세우는 중국을 겨냥한 보호조치가 국내 기업들에도 피해를 가할 수 있는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국내 산업계는 앞서 트럼프 행정부 당시 도입된 232조 조치와 반덤핑·상계관세 조사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실제 232조에 따른 쿼터제로 인해 미국의 한국산 철강 수입량은 2015~2017년 연평균 375만7000만톤에서 2021~2023년 248만톤으로 34% 감소했다. 바이든-해리스 정부의 경우 그간 미뤄오던 301조 조치 연장 검토를 끝내고, 전기차·배터리·태양광·핵심광물 등에 301조 관세를 최대 100%까지 인상했다.
국내 산업계는 두 후보가 각각 내세우는 산업 정책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가 추진한 IRA 세액 공제에 대해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폐지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IRA 폐지는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미국 현지 투자의 불확실성을 높여주는 리스크다. 트럼프는 반도체법(칩스법)까지 폐지 또는 축소할 의지를 계속 비춰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미국 투자 프로젝트 리스크도 키우고 있다. 해리스의 경우에는 법인세 인상이 부담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해리스 공약대로 법인세율이 21%에서 28%로 오르면 S&P500 기업의 수익이 5% 타격을 입을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현지 법인을 두고 사업을 하는 국내 산업계도 법인세 인상 정책의 영향권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
이에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은 미국 대선 후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직접 미국 정계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에서 상원의원단 7명,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등과 만나 삼성과 미국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회담에는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과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배석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SK서린빌딩에서 상원의원단을 만나 SK의 미국 반도체·배터리 사업을 논의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한미일 3국 경제대화 모임 참석을 계기로 미국 대표단 등을 만났다.
사장단 비상회의를 개최하는 기업들도 있다. 최태원 회장은 SK 계열사 경영진과 함께 글로벌 경영환경 점검회의를 주재했다. HD현대도 권오갑 회장과 정기선 부회장을 비롯,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한 사장단 긴급회의를 열어 글로벌 경영환경 리스크를 점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