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성동규 기자 |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확전을 노리고 이란을 분쟁에 끌어들이려 덫을 놓았다고 주장했다.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찾은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스라엘이 이날 레바논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해 맹폭을 퍼부어 2100여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나오자 작심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그는 이날 "우리는 싸움을 원치 않는다"면서 "모두를 전쟁으로 끌어들여 역내 불안정을 초래하길 원하는 건 이스라엘이다. 그들은 우리를 우리가 원치 않는 지점으로 끌고가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말로는 확전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행동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지난 17∼18일 레바논 전역에서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 수천개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 현지 헤즈볼라 조직원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7월 31일 자신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려 이란을 찾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폭사한 것도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란은 중동의 불안정을 원치 않는다"면서 "이스라엘이 똑같이 할 의사가 있기만 하다면 우리는 모든 무기를 내려놓을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쟁의 단초가 된 하마스의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기습공격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이란이 몰랐다는 걸 미국은 알고 있고 이스라엘도 매우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내 학교와 병원 등을 공격한 것에 대해 '집단학살'(genocide)이라고 규탄하면서 "이런 압제와 불의를 그냥 지켜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면서 덧붙였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란 핵 합의'(JCPOA) 복원을 위한 협상에 나설 의사가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유럽 등이 이란이 다른 협정에 서명하도록 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는 2015년 합의됐던 것과 동일한 내용을 지킬 준비가 돼 있다"며 "이란은 미국, 유럽과 협상에 착수하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JCPOA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 등 6개국이 2015년 이란과 체결한 협약으로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일부 동결하거나 축소하는 대가로 서방 국가들이 대이란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게 골자였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핵 개발을 막는 데 별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집권 기간 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란은 이에 따라 협약을 무시하고 우라늄의 농축 순도를 3.67%에서 무기화가 가능한 60%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집권 직후 JCPOA 복원을 선언하고 2021년 4월부터 이란과 협의를 진행했으나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태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이란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공급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이란은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탄도미사일을 공급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찬성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온건 개혁파로 분류되는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강경 보수 성향의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지면서 치러진 대선에서 젊은 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승리했다. 이번 유엔총회 참석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외교무대 한복판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