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불황에 기업 가치 제고·재무 건전성 어필해
매일일보 = 이선민 기자 | 주요 유통기업들이 장기화한 불황에서 벗어나고자 자사주 매입을 이어가고 있다.
6일 유통가에 따르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 김동선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전무,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의 장남 최준호 부회장 등 오너 3세들이 책임경영과 기업가치 제고를 표방하며 올해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기업 3세들만 자사주를 사들이는 것은 아니다. 내수 시장 침체가 길어진 지금 자사주 매입은 주가를 지탱하고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시장에 어필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이다.
박문서 동원산업 지주부문 대표이사는 책임경영의 일환으로 자사주 5000주를 매입했다. 김상준 애경산업 대표도 앞서 자사주 2058주를 매입했다. 애경산업은 임원인 정창원, 손희정, 이현정 상무도 각각 자사주 1000주씩을 매입했다.
자사주 매입은 회사가 시장에서 자사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 것으로 여러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우선 주식 수를 줄임으로써 남은 주식의 가치를 높이게 된다. 또 경영진이 기업이 스스로의 주식에 대해 신뢰를 가진다는 의미로 작용해 기업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다.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맡은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고위 임원들이 자사주를 사들이는 것이나 네이버가 약 4000억원을 투입해 자사주를 매입·소각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전략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업 3세들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에 대해 전면에 책임경영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승계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경영진이 자사주 매입 계획을 공개하면 일시적으로 기업 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염두에 둔 밸류업 워싱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올해 신유열 롯데지주 전무는 롯데지주 보통주 7541주를 매입한 후 2차로 자사주 4255주를 장내 매수했다. 신 전무가 보유한 롯데지주 보통주는 총 1만1796주로, 전체의 0.01%다.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도 자사주 3400만주를 주당 1600원에 공개매수했고, 보통주 공개매수 청약에는 총 2816만4783주가 응모했다. 최준호 형지 부회장도 까스텔바작 보통주 5850주를 주당 3426원에 매입했고, 형지엘리트 보통주도 10만170주를 사들였다. 최 부회장은 두 회사의 보통주를 매입하는 데 총 1억3900여만원을 투입했다.
오너 일가의 자사주 매입은 경영권 세습의 일환으로 여겨질 수 있어 비판을 받기도 한다. 경영권을 차세대에게 물려주는 과정에서 자사주를 매입하면 3세의 지분율을 높여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거, 경영권 승계를 용이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사주 매입은 주가를 일시적으로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인 경영 전략이 부재할 경우 주가 유지에 실패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 3세들의 자사주 매입은 부작용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오너 일가의 자사주 매입은 침체된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책임경영을 실천하는 수단”이라면서도 “자사주 매입이 승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사익을 추구하는 것으로만 보이지 않으려면 기업의 투명한 재무 운영과 진정한 성장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