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바탄 원전 건설 재개 타당성 조사 MOU 체결
북·러 군사협력 비판···남중국해 항행 자유 보장 협력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한국과 필리핀이 7일(현지시간) '전략적동반자관계'를 수립하기로 했다. 지난 1949년 수교 이래 양국이 공식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특히 원전과 국방 분야에 있어서 양국의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필리핀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과 마닐라 대통령궁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양국 협력 강화 방안에 합의했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진행한 공동언론발표에서 "이번 방문을 통해 양국 관계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오늘 저와 마르코스 대통령은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해서 한-필리핀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밝혔다.
전략적동반자관계 설정을 계기로 양국은 원전·국방·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바탄 원전 재개를 위한 타당성 조사 협력 양해각서(MOU)'가 체결돼 양국 간 원전 협력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바탄 원전은 지난 1986년 완공 직전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여파로 공사가 중단됐으나, 지난 2022년 취임한 마르코스 대통령은 고질적인 전력난 해소를 위해 바탄 원전 가동을 추진하기로 하고 우리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회담에서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체코 신규 원전 건설의 우선 협상자로 선정된 만큼 필리핀과 최적의 원전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이에 마르코스 대통령도 "한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국방·방산·해양 등 안보 분야 협력도 주목된다. 먼저 양국은 필리핀이 실시하는 연안 훈련에 우리 군이 참여하는 것 등을 포함해 국방 협력을 강화한다. 두 정상은 또 필리핀이 2023∼2028년까지 추진 중인 군 현대화 사업에 한국의 참여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두 정상은 북한 핵 도발을 포함한 역내 안보 현안에 대한 의견도 교환했다. 윤 대통령과 마르코스 대통령은 북한의 무모한 핵 개발과 도발, 북한과 러시아 군사 협력을 용인할 수 없다는 데 공감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아울러 양국 정상은 남중국해에서 규칙 기반 해양 질서 확립,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경제 분야에서는 대형 인프라 사업 참여를 추진한다. 대표적으로 필리핀 정부의 '빌드 베터 모어(Build Better More·BBM)'라는 인프라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 등의 참여가 점쳐진다. 필리핀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따라 교량과 댐 등 대형 인프라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는 라구나 호수 순환도로 건설, 필리핀 중부 파나이, 귀마라스, 네그로스 3개 섬을 연결하는 PGN 교량 사업에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에서 약 20억 달러(한화 2조6900억원)를 지원하는 MOU를 체결했다.
박춘섭 경제수석은 현지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우리 정부는 글로벌 중추 국가를 목표로 EDCF의 역할을 키워 이제 1조원이 넘는 대규모의 사업도 지원이 가능하다"며 "필리핀 지역경제 발전을 지원하는 동시에 우리나라 기업의 대형 인프라 사업 수주를 지원함으로써 양국이 윈-윈 하는 경제 협력 성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이 지난 2023년 9월 서명한 한·필리핀 자유무역협정(FTA)도 조속히 발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협력, 디지털 전환 분야도 주요 의제로 올랐다. 인적 교류 활성화와 자국민 안전 강화 등에도 합의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 관계에 대해 "필리핀은 75년 전 동남아 국가 중 최초로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나라이며, 6.25 전쟁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병력을 파견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운 고마운 나라"라며 "그동안의 양국 관계 발전은 이처럼 피로 맺은 신의와 연대에 기초를 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