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 MLCC 공장…이재용 “적극 선점하라”
한화·HD현대, 방산 공략…한진·두산, 신사업 모색
매일일보 = 이상래 기자 | 국내 산업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 국가인 필리핀 시장을 정조준 한다. 필리핀은 미국과의 중국의 주요 전장인 아태 지역에서 군사적·경제적 전략 요충지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한화그룹, HD현대, 한진그룹, 두산그룹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필리핀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필리핀은 인구 1억1290만명으로 아세안의 거대한 시장이다. 지난해 경제 성장률이 5.6%를 기록할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남중국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거점으로서 군사적 중요성도 높다. 미국과 중국이 필리핀 영향력을 양보할 수 없는 이유다. 실제 필리핀 정계를 양분하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친미’,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친중’ 성향을 보이며 대립하고 있다.
국내 산업계는 아세안 시장의 핵심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필리핀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에서는 필리핀 칼림바에 삼성전기 생산법인의 적층 세라믹 커패시터(MLCC) 공장이 위치했다. 삼성전기는 2015년 2880억원을 투자해 생산라인을 추가 증설하는 등 필리핀을 부산·톈진과 함께 핵심 생산 거점으로 육성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6일 필리핀 MLCC 공장을 찾아 “인공지능(AI), 로봇, 전기차 시장의 확대에 따른 기회를 적극적으로 선점하라”고 말했다.
한화와 HD현대는 필리핀 방산 부문에서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필리핀은 국방력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 필리핀은 2조원 규모의 중형급 잠수함 2척을 발주할 계획이다. 최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안방산안보전시회(ADAS) 2024’에 한화와 HD현대 모두 참가해 대규모 부스를 꾸렸다. 한화오션은 중형급 수출형 잠수함 2종과 자체 개발한 수출형 4000톤급 호위함 등을 전시했다. HD현대중공업도 수출용으로 개발한 차기 호위함을 비롯해 경비함, 잠수함 등 함정 모형 12종을 전시했다. HD현대중공업은 과거 필리핀에서 호위함 2척, 초계함 2척, 원해경비함 6척 등 총 10척의 함정을 수주한 경험이 있다.
한진그룹의 경우 조원태 회장이 최근 필리핀의 세부퍼시픽항공과 항공기 유지·보수·운영(MRO) 협력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새로운 해외 MRO 시장 개척과 정비 사업 수주에 대한 가능성을 키웠다. 대한항공은 MRO 사업 중 엔진 정비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1972년 국내 항공당국과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인가를 받아 항공기 엔진 수리를 시작해 현재까지 총 5000대에 가까운 엔진을 분해 정비했다.
두산그룹은 필리핀 전력 인프라 분야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필리핀 최대 전력 기업 메랄코와 손을 잡았다. 메랄코는 39개 도시, 72개 지자체에서 필리핀 전체 전력의 약 55%를 공급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메랄코와 원자력, 소형모듈원전(SMR), 가스터빈을 중심으로 필리핀 발전 인프라 분야에서 협력할 예정이다. 또한 민자발전사인 퀘존파워와는 필리핀 복합화력발전소 추진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