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 내년 주총 표 대결로 장기화 조짐…'캐스팅보트' 국민연금 설득에 최 회장 힘 실려
매일일보 = 서영준 기자 | 법원이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을 저지하기 위해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제기한 2차 가처분 신청을 또 다시 기각하면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명분 싸움'에서 승기를 잡았다. 이로써 최 회장은 오는 23일까지 자사주 공개매수를 예정대로 진행하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김상훈)는 21일 영풍이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박기덕·정태웅 대표이사를 상대로 낸 자기주식 취득 금지 2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번 가처분은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주당 89만원에 수조원대 규모로 공개 매수한다고 하자 영풍 측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며 이를 막아달라는 취지로 법원에 신청한 것이다. 양측은 고려아연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각자 자금을 동원해 주식 공개매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재판부는 "최 회장 측이 자사주 공개 매수를 추진함으로써 자본시장법과 상법, 정관 등을 위반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영풍 측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공개매수가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는 점이 소명됐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은 배임이 아닌 회사 방어 차원의 조치'라는 최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앞서 같은 재판부는 지난 2일에도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자사주 취득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당시 법원이 기각한 1차 가처분은 지난 4일 끝나는 MBK 측의 공개 매수 기간에 고려아연 법인의 자사주 매입을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법원은 "공개매수 기간 자사주 매입을 막는 규정이 없다"는 취지로 기각했다.
법원 가처분 결과가 나온 후 고려아연은 입장문을 통해 "영풍-MBK '재탕' 2차 가처분이 또 기각됐고, MBK 측의 시장 교란 의도가 입증됐다"며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의 불확실성을 높여 주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함으로써 영풍과 MBK의 공개매수에 응하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된 꼼수라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풍과 MBK의 공개매수 보다 6만원이 많은 확정이익에도 불구하고 5%가 넘는 주주들에게 인위적으로 재산상 손실을 끼쳤다는 점에서 시세조종 및 자본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조사와 법적 처벌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당사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가처분 결과가 나온 후 주가는 급등했다. 전날 82만4000원에 마감했던 고려아연 주가는 장 초반 76만1000원까지 하락했다가 가처분 결과가 발표된 이후 한때 88만9000원까지 올랐다.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인 89만원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오전 11시30분 기준 전날 대비 약 6% 오른 87만원대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양측의 공개매수는 한쪽의 과반 지분율 확보 없이 마무리될 전망이라 내년 주주총회 표 대결로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때 캐스팅보트인 국민연금(지분 7.83%) 설득에 있어 최 회장 측에 힘이 더 실리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올해 3월 주총에서 고려아연 경영진 편에 선 바 있다. 이에 대해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지난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절차가 있기 때문에 현재 어떻다고 말하기 어렵다. 장기적인 수익률 제고 측면에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