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계 행보에 특검 명운···尹, 면담 직후 與 2인자와 회동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김건희 여사 관련 '3대 조치'를 요구했지만 모두 거부당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만남이 '빈손'으로 끝나면서 친한동훈(친한)계가 다가올 '김건희 특검 정국'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주목된다. 앞서 친한계는 이번 회동이 성과 없이 마무리될 경우 여당 의원들 다수가 '특검 찬성'으로 돌아설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22일 여권에 따르면 한 대표는 앞서 예고한 대로 김 여사 리스크를 상쇄할 방안을 전날 있었던 윤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언급했다. 한 대표가 건의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김 여사 공개 활동 중단 △대통령실 내 '여사 라인' 정리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 사항 설명 △특별감찰관 임명 등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이들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먼저, 김 여사의 공개활동 중단에 대해 윤 대통령은 "(김 여사 활동은) 과거 정부 관례에 따라서 해왔다"며 문제없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적쇄신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누군가가 어떤 시기에 어떤 문제를 야기했는지 근거를 대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단서를 달았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 관련 문제는 제2부속실 설치로 대응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의 설명도 여권 안팎의 전언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김 여사의 대외활동 자제를 요청한 한 대표에게 "전직 영부인 관례에 근거해 활동을 줄였는데 그것도 과하다고 하니 더 자제하려고 한다"며 "김 여사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꼭 필요한 공식 의전 행사가 아니면 이미 많이 자제하고 있다. 앞으로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의혹 규명에 협조해달라는 요청에 대해선 "일부 의혹은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고, 의혹이 있으면 막연히 얘기하지 말고 구체화해서 가져와 달라"며 "다만 의혹을 수사하려면 객관적 혐의나 단서가 있어야지 단순한 의혹 제기로 되는 건지, 문제가 있으면 수사받고 조치하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하면서 이제 시선은 국회에서 벌어질 '3차 김건희 특검 정국'으로 향하고 있다. 친한계는 면담에서 한 대표가 요구한 조치가 김 여사에 성난 민심을 잠재우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방편'으로 봐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다음 특검 표결에서 친한계의 움직임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한 대표 등 친한계 지도부는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도, 최근 검찰이 김 여사 관련 의혹들을 연일 불기소 처분하고 '공천 개입 의혹' 등 김 여사를 둘러싼 새로운 의혹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여당 의원들이 들끓는 여론을 외면할 수 있겠느냐고 우려한다. '여론 부담'이 감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여당 의원들도 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친한계인 김종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앞서 "이번 면담 자체가 빈손으로 끝나버리고 여론이 악화되면 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될까 봐 걱정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날도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특검법 통과 가능성을) 굉장히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단일대오'를 외쳤던 지난 4일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 당시 여당에선 4표의 이탈표(찬성 194표, 반대 104표, 기권 1표)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해 여당의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원내 친한계는 20여명 정도로, 이들 중 일부만 돌아서도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이 가능해진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의 면담 직후 '국민의힘 2인자'인 추경호 원내대표를 불러 회동했는데,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특검법 이탈표 단속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한 대표는 특검 관련 '무더기 이탈표' 발생에 대한 우려를 윤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명확히 전달했다고 한다. 한 대표는 "그동안 여당 의원 수십 명을 설득해 김 여사 특검법이 통과되는 상황을 제어했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감당하지 못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윤 대통령은 "만약 우리 의원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야당 입장처럼 가겠다고 하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야당은 '빈손'으로 돌아온 한 대표에게 이제는 김건희 특검법을 수용하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한 대표가 면담 전에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고 말했다는데, 김건희 여사 특검을 거부하면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같이 죽을 뿐"이라며 "김 여사의 공천개입, 국정농단 의혹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나오고 실체가 갈수록 분명해지는데도 김 여사 특검을 하지 말자는 건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