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하반기 들어 유가증권시장서 11조 넘게 순매도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미국 대선이 목전으로 다가온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며 강달러 기조가 부활하고 있다. 강달러 현상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내에서도 금리인하 속도조절론이 나오는 데다 미국 대선 이슈가 겹쳤다. 내년에도 달러가치는 견조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특히 이같은 강달러 현상은 국내 증시에서 자금이탈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동학개미들이 ‘미국 주식’으로 눈을 돌리고 있고, 외국인의 이탈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2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국내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해외 주식 및 채권은 1372억 5788만달러(187조 9747억원)로 집계됐다.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136조원)보다도 큰 금액이다.
해외 투자는 올해도 급증세를 타며 작년 말 보관금액(1041억 8835만달러·142조 6860억원)보다 330억 6953만달러 늘었다. 이는 2022년 말(766억 8632만달러·105조 219억원)과 견줘 78.99% 급증한 수치다. 특히 서학개미의 매수세가 집중되는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현재 914억 5843만달러(125조 2523억원) 수준으로 올해에만 234억 3494만달러(32조 942억원)가 증가했다.
코로나19 직후만 해도 발 빠른 일부 개미들의 전유물이었던 해외 주식투자는 이제 모든 투자자의 ‘필수’가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해외 증권 투자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잔액 기준)은 2019년 말 7.3%에서 지난해 말 20%로 커졌다.
시장에서는 미국 주식을 사려는 개인투자자의 달러 수요가 보태지면서 환율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려면 달러를 매입한 후, 주식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코스피는 2.31% 하락했지만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지수의 상승률은 22.95%에 달한다. 게다가 소액주주 수가 424만명으로 ‘국민주’라 불리는 삼성전자는 올해만 24.59% 내렸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국내 주식시장 속에 투자 수익률을 높이려는 요구가 맞물리며 해외주식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개인 투자자의 공격적인 투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며 환율상승 압력 등 외환 수급에 미치는 영향력도 점차 커졌다”고 분석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 역시 “연말에 가까워지도록 금융투자소득세 이슈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코스피를 대표하는 삼성전자마저 부진에 빠지며 해외 투자에 관심 없던 투자자들마저 ‘국장은 답이 없다’, ‘이럴 거면 미국 주식을 사자’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미국 주식이 분산 투자를 위한 대안이 아니라 국장의 대체재로 부각하며 투자금 또한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인하 국면 진입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강달러 현상은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자금 유출도 가속화 시키는 중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월간으로 지난 8월부터 3개월째 순매도세를 보이고 있다. 8월부터 지난 18일까지 국내증시에서 외국인은 총 12조9644억원 순매도하고 있다. 이는 코스피 지수가 지지부진하게 2500~2600선 근처에서 정체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반도체 업황 둔화 전망에 국내증시 대장주인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심리가 악화하면서 자금이 유출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8월부터 지난 18일까지 외국인의 삼성전자 순매도 금액은 13조5316억원에 달한다. 외국인의 한국 증시 대표 투자처인 대장주로서 사실상 증시 부진 분위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외국인의 매도세를 더 강화하는 것은 꺾이지 않는 달러 강세다. 원화가 상대적으로 약세라는 얘기인데, 이렇게 되면 환차익까지 생각하는 외국인 입장에선 한국증시 투자 메리트가 낮아진다.
이주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후보는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하는 발언을 연이어 내놓고 있어 당분간 달러가치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연간으로도 달러화 가치는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임혜윤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하 사이클에서도 달러화 약세 압력은 제한될 전망"이라며 "정책을 활용한 양호한 성장과 달러화 표시 자산에 대한 수요가 달러화 가치를 지지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