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일본보다 크게 뒤떨어진 것으로 알려진 한국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이 실제로는 일본을 이미 추월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KIET) 강두용 선임연구위원은 16일 ‘대일 캐치업 이후의 한국 제조업’보고서에서 “PPP(구매력평가) 환율, 취업자당(per worker) 부가가치 기준으로 한국 제조업 생산성은 2008년 일본을 추월했고 2013년에는 일본보다 약 12%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PPP환율은 제조업 생산성 수준을 국제적으로 비교하기 위해 주로 쓰는 지표로 나라별 화폐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빅맥지수’와 비슷한 개념이다. 일반 시장 환율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실제 제조업 생산성을 비교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위원은 “산업화 이후 한국 제조업은 일본 제조업을 모델로 추격하는 형태로 성장했다”며 “노동시간당(per hour) 부가가치 기준으로도 한국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은 일본의 96% 수준으로 거의 근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제조업의 취업자당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 중에는 10위를 차지했다. 다만 1~9위 가운데 아일랜드 등 상당수는 고용규모가 수십만 명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실질 순위는 더 올라간다.
강 위원은 한국이 세계 10대 제조업 강국 중에서는 미국, 프랑스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취업자당 노동생산성은 2007년에 이탈리아, 2012년에 영국, 2013년에는 독일을 차례로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시간당 생산성은 OECD 가운데 17위로 아직 중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세부 업종별로는 전기전자, 금속제품, 섬유 분야의 취업자당 노동생산성이 일본보다 크게 앞섰다. 특히 금속제품, 1차금속의 경우 한국은 미국보다 수치가 높게 나왔다.
반면 경공업(섬유 제외), 석유석탄, 화학, 1차 금속 업종에서는 일본이 한국보다 우위였다.
강 위원은 상승곡선을 그리던 생산성은 최근 들어서는 크게 둔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취업자당 노동생산성 상승률이 2000년부터 10년간은 평균 7.2%로 높았지만 2010~2013년에는 2.8%, 2014년에는 0.5%로 급격히 낮아졌고 올해 상반기에는 -2.7%로 내려앉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취업자당 생산성이 세계 상위 수준에 도달해 후발국의 이점이 소멸되면서 최근 들어 크게 둔화하는 추세”라며 “금융 위기 이후의 생산성 둔화는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나타났지만 한국은 제조업 중심으로 나타나면서 둔화 폭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강 위원은 장시간 노동 등 기존의 양적 투입 중심의 발전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 가운데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며 OECD 평균보다는 22%, 일본보다는 25%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 위원은 “현재와 같은 장시간 노동을 유지하면서 시간당 생산성을 선진국 수준으로 캐치업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라며 “노동 시간의 단축과 더불어 혁신과 창의성에 좀 더 높은 가중치를 두는 기업문화와 경영전략, 산업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