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이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유독성을 알고도 제품을 판매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7월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면서 제품 용기에 안전하다고 허위 표시를 한 옥시 등에 과징금 5200만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4년 전 일이다.
앞서 2011년 8월에 가습기 살균제가 사망의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가 나왔다. 더구나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불복한 옥시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옥시의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 작년 2월이었다. 그럼에도 검찰의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된 것은 작년 말부터이다. 진상 규명이 계속해서 늦어진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옥시는 PHMG를 먹거나 흡입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적힌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받았다. MSDS는 화학 물질을 거래할 때 첨부하게 돼 있는 자료다. 공정위는 PHMG가 제조업체인 SK케미칼에서 원료 도매상을 거쳐 가습기 살균제 제조를 위탁 제조한 한빛화학으로, 이어 옥시로 넘어갈 때마다 MSDS가 전달된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공정위는 옥시가 MSDS 자료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PHMG의 인체 위해성을 몰랐다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옥시가 수사 당국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1년치 MSDS를 통째로 폐기한 사실도 최근 검찰 조사 과정에 드러났다. 그럼에도 14일 구속된 신현우 전 대표는 시종일관 PHMG의 인체 위해성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뻔뻔스럽다 못해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옥시가 PHMG의 인체 위해성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를 모방해 제조·판매한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도 PHMG의 인체 위해성을 인지(認知)했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 수사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가습기 제조업체들의 인체 유해성 사전 인지 여부다. 과실치사가 아니라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쟁점 사안이다.
검찰이 사건 초기부터 수사에 적극 나섰더라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앞당길 수 있었음은 물론 피해자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검찰의 대국민 신뢰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실들이 누적돼 온 것도 한몫했다. 검찰은 비록 뒤늦은 수사지만 한 점의 오점도 남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