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검증’ 공방에서 촉발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간의 ‘신경전’이 상대방 흠집내기로 확산되면서 경선 분위기가 조기과열될 조짐을 보임에 따라 한나라당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인 두 사람 간의 기싸움으로 한나라당 내에선 “권력투쟁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집권이 어렵다” “서로 칼을 겨누는 것은 공멸의 길” “대선 패배의 뼈아픈 전철을 재차 밟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22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강재섭 대표는 “후보 진영간에 설전이 시작된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하며 “따라서 지나친 설전이 상호비방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 대표는 또 “사실상 모든 검증은 당이 주도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며 “검증에 관해서는 이미 밝힌 바와 같이 2월 초에 경선준비위원회를 구성해서 당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명진 당 윤리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 상황에 대해 “아슬아슬하고 불안하다”며 “감정 싸움이 지나치면 본선 때 서로 협력하기 어렵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아슬아슬하고 불안하다”
국회의장 출신의 박관용 당 상임고문은 이날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에 출연,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쓰라린 패배를 경험한 한나라당으로서는 여러 우려와 걱정이 있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같은 정당 내에서 검증은 자칫 상호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 대선 주자 중 한사람인 원희룡 의원은 앞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두 주자 간 공방이 가장 우려했던 최악의 양상으로 가고 있다. 동네 애들 싸움같다”며 “검증을 빙자한 인신 공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양쪽을 싸잡아 비난했다.
박형준 의원은 개인성명을 통해 “지지율 격차를 상대 후보 약점 잡기로 만회하려는 전략은 민심을 거스르는 것이고 그 역풍을 우리 모두가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 지도부의 자제 요청에도 아랑곳없이 후보 검증론을 펴고 있는 박 전 대표는 앞서 지난 20일 대구 시민회관에서 열린 새물결 희망연대 창립대회 축사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 지도자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 ‘경제 지도자’”라고 주장하며 이 전 시장을 직접 겨냥했다. 박 전 대표는 “표만 생각해 마구잡이로 지키지도 못할 정책, 국가적으로 도움이 안되는 정책을 발표해서는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지율 격차, 약점 잡기로 만회하나?
그동안 박 전 대표 쪽의 거듭된 공세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해오던 이 전 시장은 같은 날 대전 시엠비(CMB) 엑스포아트홀에서 열린 ‘대전발전 정책포럼’ 창립대회 초청 특강에서는 “나처럼 애를 낳아봐야 보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고, 고3을 4명 키워봐야 교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다”고 말해 아직 미혼인 박근혜 전 대표를 겨낭했다.
한쪽이 공세를 펼치고, 한쪽이 되받아치면서 ‘정면대결’로 확대되는 이 같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특히 양측 지지자들까지 합세해 ‘불’을 지피고 있다. 이들은 당 홈페이지 등에서 후보검증 문제를 놓고 격돌하며 상대방 흠집내기에 치중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사실상 ‘검증론’의 첫 포문을 연 사람은 박 전 대표로, 정치권은 이 같은 설전의 배경엔 지지율에서 크게 밀리고 있는 박 전 대표 측의 ‘다급함’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전투 모드’에 돌입했다고 보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한나라당 대권경쟁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50% 안팎의 지지율로 독주체제를 굳혀가고 있는 상태. 이에 따라 이 전 시장은 박근혜 전 대표 뿐만이 아니라 당내 다른 후보들로부터도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전투태세 준비 완료
최근 헤어스타일 변화에 이어 검증론 공세를 펼치고 있는 박 전 대표는 지난 19일 대통령선거에 대비한 실무캠프 구성을 사실상 마무리 한 상태다. 조직 개편을 마무리 했다는 것은 실질적인 전투태세를 갖췄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 15일 헤어스타일까지 바꾸고 기자들과 만나 “검증을 거치지 않고 후보를 내겠다는 것이 이해가 되느냐”고 언급함에 따라, 앞으로도 당의 자제요청에 아랑곳하지 않고 ‘검증’과 관련된 공세의 끈을 놓치 않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표의 이러한 ‘배짱’과 달리 한나라당 안팎에선 자칫 무리수가 뒤따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이런 까닭에 일각에선 ‘말로만 자제를 당부할 것이 아니라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측근들은 지난 19일 발행된 월간 ‘신동아’ 2월호를 통해 이 전 시장에 대한 세간의 의혹, 이른바 ‘이명박 X-파일’에 대해 해명하고 나서는 등 향후 대선국면에서 촉발될 후보검증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한편, 한나라당은 양측의 검증공세가 감정싸움으로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오는 29일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의원 워크숍을 열어 경선논란 등에 대한 집중토론을 벌여 적절한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