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홍대에서 청소·경비 일하던 아저씨·아줌마들의 점거농성 이야기
[매일일보=송병승기자] 사람들이 ‘홍대’라는 단어에서 처음 떠올리는 이미지는 젊음과 낭만이다.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미술작품들이 넘쳐나는 예술의 거리, 인디밴드의 메카인 홍대앞 클럽거리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뒤엉켜 젊음을 불태우는 홍대 주변 유흥가가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홍대’의 이미지이다.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홍대’의 모든 것은 아니다. ‘홍대 앞’을 ‘홍대 앞’이게 하는 근원인 ‘홍익대학교’ 안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앞서 언급한 ‘양지의 홍대’ 이면에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았던 ‘음지의 홍대’를 알려주고 있다.현재 홍익대학교 교내에서는 홍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열심히 살아가던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외치며 힘겨운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한파가 이어지던 지난 3일, 민주노총 공공노조 서경지부 홍익대 분회 소속 청소, 경비 노동자 170여명이 총장실과 문헌관 1층 사무처를 점거한 것이다. ‘점거’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해야 했던 이들에게는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매일일보>은 점거농성 2일차인 4일 ‘홍대’의 ‘아저씨, 아줌마’들을 만났다.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1인칭 시점으로 풀어봤다.청소아줌마들, 식비 안 나와 폐지 팔아 고추장·된장 샀는데, 이마저 빼앗아
학교 측에 찾아가 항의하자 나온 식비는 9천원…하루치 아닌 한 달 치였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아니 더 달라면 도둑놈이죠. 최소한
주변 학교들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과 노동 조건은 맞춰주라는 겁니다”
끝없는 잔업…보수는커녕 다쳐도 자기책임
경비의 의무는 말 그대로 경비를 서는 것이라고 용역업체에서 배웠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제 4공학관에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시험기간이 되면 도서관에서는 쓰레기가 넘쳐납니다. 하룻저녁에 깡통만 마대로 일고여덟 자류가 나옵니다. 이 마대를 싸서 옮기는 일은 모두 경비들의 몫입니다. 시험기간 2주 동안은 죽었다 살아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시험기간 뿐만 아니라 5월 축제 기간이 오면 경비들은 또다시 잔업에 투입되었습니다. 축제가 시작하기 전 그 넓은 대운동장에 천을 깔고 아침이면 동원을 나가 악취가 풍기는 음식물 쓰레기들을 다 치웠습니다. 축제가 끝나고 깔아 두었던 천막을 걷는 일 또한 경비들의 몫이었습니다. 천막을 걷을 때 비라도 내리면 그날의 피로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습니다. 가을이면 밖에 나가 낙엽을 쓸었고, 겨울이면 제설작업을 하고 도로의 얼음을 깼습니다. 오전 오후 할 것 없이 잔업이 생기면 그곳에 투입되었습니다. 혹여나 잔업을 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 누구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이 오로지 자신의 책임이었습니다. 몸의 피로나 부상을 막기 위해 조금 요령이라고 피울라 치면 들려오는 건 조장의 잔소리였습니다. 학교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사서 할 일을 모두 경비들에게 맡겼습니다. 경비들은 24시간 2교대 근무를 서면서 모든 잔업까지 소화해 내야 했지만 그 잔업에 대해 우리들에게 주어진 돈은 단돈 1원 한 푼도 없었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근무하는 제 4공학관의 남자 휴게실은 지하 1층에 있습니다. 여름에 비라도 오면 물이 새고 곰팡이가 찾아옵니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아프고 가래가 끓습니다. 몇 번이나 학교 측에 개선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대답은 없었습니다.홍대 주변에 몇 군데의 학교가 있습니다. 제가 속한 용역업체가 들어가서 경비업무를 맡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더 달라면 도둑놈입니다. 최소한 그 학교와 비슷한 수준의 임금과 노동 조건을 바라는 것입니다. 하루 빨리 일이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 ‘청소 아줌마’의 이야기
청소 아줌마들은 폐지를 팔았습니다. 손바닥 만한 종이라도 줍고, 젖은 종이는 말려서 팔았어요. 학교에서 식비가 안 나오니 아줌마들은 폐지를 판돈을 모아 고추장 사고 된장 사고 해서 함께 식사를 했어요. 그나마 폐지 판 돈이 있어서 따듯한 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죠.그런데 2009년 봄 즈음 학교에서 폐지를 팔지 말라더군요. 학교 측에서 폐지를 팔아 학생들 장학금을 준다는 명목이라면서 아줌마들이 겨우 따듯한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그 폐지 마저도 빼앗아 버렸습니다.그렇다고 해서 폐지를 수거하는 사람을 따로 고용한 것은 아니에요. 학교는 우리가 수거해서 분리한 폐지를 가져가 팔았어요. 너무 화가 나서 학교 측에 항의를 했더니 그 뒤로 식비가 나옵디다. 9천원. 하루가 아닌 '한 달'치 였어요.
예고 없던 ‘계약해지’
새로운 한해의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들떠 있었던 1월 3일 월요일. 출근한 우리들에게 찾아 온 것은 아무런 예고도 없었던 ‘계약 해지’였어요. 항상 청소하고 머물던 자리에 ‘계약이 해지 됐다’는 인쇄물만이 붙어있었어요.우리 애들은 내가 여기서 이렇게 점거 농성 하고 있는지 몰랐는데 언론에 기사가 나가면서 다 알아버렸어요. 육십 평생에 이런 일 해본 적 없지만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답니다.뉴스를 본 어느 친구는 전화해서 ‘나이 육십 넘게 먹고 머리 빨간 띠 두른다’며 농을 치기도 하지만 이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하니까 즐겁고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찬 바닥에서 얇은 이불 하나 덥고 잠을 자지만 좋은 경험, 추억이라 생각 하면서 즐겁게 할 생각이에요. 그래야 다시 일자리로 돌아 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지 않을까요?“농성자들, 정직원 될 가능성 없다”
매정한 홍대, 방한용품 반입 막아 한 때 마찰 일기도
지난 3일부터 홍익대학교 청소, 경비 노동자 170여명은 총장실과 문헌관 1층 사무처를 점거 후 ‘고용승계’를 외치며 농성 중에 있는 가운데 학교 측이 방한용품 반입을 막아 한때 마찰이 일어나는 등 갈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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