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최은서 기자]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중형이 선고되며 불행한 전직 대통령의 역사가 되풀이됐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자 첫 부녀대통령으로 청와대에 재입성했지만 국정농단 사태로 헌정사상 탄핵된 첫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얻은데 이어 중형을 선고받은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 됐다.
◇최초 여성대통령에서 수인번호 ‘503’
6일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17일 재판에 넘겨진 지 354일만에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농단의 주된 책임은 헌법이 부여한 책임을 방기한 박 전 대통령에게 있다고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18대 대통령에 당선돼 2013년 2월 25일 취임하며 화려한 시작을 알렸지만 2016년 국정농단 사태로 헌정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며 첫 파면 대통령으로 추락했다.
과거에도 박 전 대통령은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게 피격당해 숨지고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도 총탄에 숨지자 쫓겨나듯 청와대에 나왔다. 이후 33년만에 화려하게 대통령 신분으로 재입성했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에서 파면돼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청와대를 나오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27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데 이어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영장실질심사도 받았다. 그 후 4일 만인 31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박 전 대통령은 구치소에 수감, 박 전 대통령의 호칭은 수인번호 ‘503’으로 바뀌었다.
탄핵된지 약 한달 만인 지난해 4월 17일 재판에 넘겨진 후 이날 사법처리가 일단락, 1년 6개월만에 국정 농단 사태가 사실상 마무리 됐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비리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아 수난의 ‘흑역사’를 이어간 장본인이 됐다.
◇우여곡절 겪은 재판 과정
앞서 박 전 대통령의 사건 공판은 두 차례의 공판 준비일을 거쳐 지난 2월 27일 결심공판까지 총 100차례 열렸다. 혐의가 18개로 방대해 사건 기록만 12만 페이지가 달하는 등 심리할 사항이 많아 재판을 주 4회씩 진행해서다.
재판 진행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은 재판부에 대한 불신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박 전 대통령은 법원이 추가 구속 영장을 발부하자 직후 재판인 지난해 10월 16일 입장문을 직접 읽어 내렸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의 대한 믿음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정계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고 밝힌 이후 ‘재판 보이콧’으로 일관했다.
유영하 변호사 등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도 총사퇴 해 재판은 43일 간 공전하기에 이르렀고, 재판부의 지정으로 국선 변호사 체제가 갖춰지면서 공판은 본 궤도를 찾았다.
증인 채택자들도 ‘불출석’하면서 재판이 지연되기도 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건강상 이유로, 구본무 LG회장은 개인 사정으로,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회장은 해외 출장 일정으로 참석하기 어렵다는 사유로 불출석했다.
공범 최순실 씨도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본인도 박 전 대통령의 사건과 관련해 재판 중이어서 출석할 수 없다는 내용의 사유서를 내고 나오지 않았다.
한편 이날 박 전 대통령은 마지막 날까지도 법정에 불출석하며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